[이종수 칼럼] 한국 사회는 19세기 독점자본주의 시대로 회귀하는가?

미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대한 신생 기업들이 상당수 등장하였으나, 한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대형 기업이 단 하나도 새롭게 태어나지 못했다. 2006년 ‘포춘 500’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시가총액 상위 40개 회사 중 13개가 1970년 이후에 설립됐다. 시가총액 3위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하여, 월마트(6위), 시스코(14위), 인텔(17위), 구글(21위), 암젠(27위), 퀄컴(30위)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통계치는 미국 기업의 생태환경이 그만큼 경쟁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에 비해 한국의 경우에는 1967년 창업한 대우그룹 이외에 기업집단 상위 40위(2006년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안에 든 신생기업이 하나도 없다. 이는 한국의 경우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통로가 거의 막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표현하면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체제가 중소기업의 성장을 철저하게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독점(獨占, monopoly)이란 특정 자본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현실 경제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은 소수의 대기업이 제품 생산 및 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신참 기업의 진입을 방해하고 시장가격을 유리하게 책정함으로써 독점이윤을 누리는 상황이다. 독점은 자유경쟁에 기초한 공정 거래를 억제함으로써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시장에서 독점체제가 구축되면 자본주의 체제는 독점자본주의(monopoly capitalism) 체제로 전화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이 집적·집중됨에 따라 자유경쟁이 바탕이 되는 산업자본주의의 단계에서 거대한 소수의 독점기업이 지배적인 힘을 가지는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미국 등 일부 서구 사회에 구축된 경제 질서가 독점자본주의 체제로 규정된다. 독점자본주의 단계가 되면 거대한 소수 기업이 경제적 지배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면 또한 빈부의 현격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근년 들어 우리나라의 경제력 집중 현상은 점점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의 2010년도 매출 규모는 603조 3000억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GDP의 51% 수준에 이른다. 경제력의 쏠림 현상이 그만큼 심화된 것이다. 또한 상위 10대 그룹의 계열사 숫자는 2008년 405개에서 2011년 4월 현재 617개로 늘었다. 10대 그룹의 계열회사가 최근 3년간 5일마다 하나씩 새로 생긴 셈이다.

산업부문별로 보면, 우리나라의 휘발유와 경유 시장은 SK와 GS 등 4개 정유회사가 98%의 시장점유율을 수십년째 유지하고 있으며, 제당업계는 CJ와 삼양사, 대한제당 등 3개 회사가 내수시장을 100% 점유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이들 기업들은 시장을 분할 지배하면서 출고량과 가격을 담합, 지난 수십 년간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겨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기업의 매출 규모가 단순히 커진 것이나 대기업이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기업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경쟁 사업자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중소기업이 개척해 놓은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해버리는 등 우리나라 대기업의 사업 방식은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의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예를들어, 2006년 중소기업 고유 업종 지정 제도가 폐지되자, 대기업들이 폐타이어 재생 사업에까지 너도나도 진출했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으로 경제력이 급격하게 집중된 것은 정부의 방임과 정책기조 변경에 힘입은 바 크다. 재벌기업들의 자산과 계열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2007년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함께 사는 산업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독점자본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 독점자본은 국가 기관의 종속화를 통해 자신의 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화하고자 한다. 독점자본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꾸도록 영향력을 발휘하고 시장의 경쟁 질서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 신규 또는 경쟁사업자의 배제 장치를 마련토록 정부에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하게 된다. 전경련과 같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단체들이 정권 교체를 계기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정책을 완화하고,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폐지하며, 중소기업 고유 업종 제도를 폐지토록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 것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시장지배적 기업들이 관료들과 결탁하여 장치산업 등 특정 산업의 시설기준을 강화토록 하거나 품질 규격을 까다롭게 하고, 설탕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제당(製糖) 업체들이 담합하여 수입 관세를 대폭적으로 인상토록 하는 행위 등도 신규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기 위한 불공정 경제 행위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소수의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고 있는 오늘의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독점자본(monopolistic capital)의 횡포가 극심하였던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서구 상황에 비견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 행위를 정부가 방관하거나 심지어 방조하기까지 한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은 중소기업보다 대자본이 훨씬 많이 장악하고 있다. 관료집단을 포획(capture)할 자원이 풍부할 뿐 아니라 지식인 용병(intellectual mercenary)과 언론을 동원하여 대중조작을 할 수단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공익보호를 위한 사회적 감시가 조금이라도 소홀해지거나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약해지면, 곧바로 약탈 경제체제로 바뀌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의 생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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