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칼럼] “문제는 공정한 경쟁규칙이야!”

박근혜 대통령이 2월25일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중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진국 함정’에 빠진 대한민국 어떻게 구할 것인가?

인류사회의 역사는 권력, 부, 명예와 같은 사회적 가치(social values)의 쟁취를 둘러싸고 국가 간, 집단 간, 개인 간 다툼이 끊임없이 전개되어 온 투쟁의 역사다. 역사상의 무수한 사상가들은 사회적 가치를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는 이상적 원리를 찾아 고심해 왔다.

사회적 가치의 배분은 기본적으로 정부(government)와 시장(market)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부는 정책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권위 있게 배분한다. 이에 반해 시장에서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상품과 서비스 교환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 의한 가치 배분이 효율적ㆍ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평등의 원리도 충족시킴으로써 도덕적으로도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유시장은 모든 사람들에게 경쟁의 기회를 개방함으로써 평등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바, 정부가 강압적 권위를 통해 평등을 인위적으로 추구하게 되면 자유가 파괴되고 그 결과 평등마저 파괴된다는 논리로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의 배제를 주창한다.

그러나 20세기 초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같은 시장의 결함과 병폐가 드러나면서 거대한 복지국가가 시장을 대체하는 새로운 국정관리 양식이 대두되었다. 다시 말하면 시장실패를 보정하기 위한 ‘보이는 손(visible hand)’으로서의 정부개입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1970~1980년대 불어 닥친 전 세계적 경기불황과 각국이 맞닥뜨린 재정위기는 다시 정부를 퇴위시키고 시장을 등극시키는 역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시장이 정부를 대체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하는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심지어 시장의 실패까지 시장에 맡겨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큰 시장-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다양한 감축관리(cutback management) 처방을 내놓았다.

정부와 시장의 관계는 21세기 들어 다시 그 역할의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맞게 된다. 특히 2008년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간 월가(Wall Street)의 금융시스템 붕괴는 자유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과 영국에서조차 정부가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정부의 귀환(the return of the state)’이 공공연하게 회자(膾炙)되게 만들었다.

한편 자본주의 전도사들의 부흥회로 불리는 다보스포럼(Davos Forum: World Economic Forum)의 2012년도 회의에서는 이 포럼의 창설자이자 집행위원장인 슈바브(Klaus Schwab)가 “현재의 자본주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Capitalism, in its current form, no longer fits the world around us)”고 현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을 선언하였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승자독식의 시장자본주의(market capitalism)적 분배방식이 그 역사적 수명을 다했다고 지적하면서, ‘경제적 공정성(economic fairness)’의 확립을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각성한 대중들의 평등 공정사회 요구 ‘분출’

정부-시장 관계에서 정부쪽으로 기운 21세기의 추(錘, pendulum)는 이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변화(非可逆變化, irreversible change)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회적 의사결정에서 직접 민주적 방식의 확산은 99%의 각성한 대중들로 하여금 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경제적 질서를 추구토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본질적 기능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제도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이다. 사회적 제도는 가치 배분의 원칙이 안정적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공정한 사회경제적 질서를 구축하는데 있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과연 사회적 규칙을 공정하게 설계하고 관리하는 중립적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다원주의 국가론자들은 국가를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집단의 이익 갈등을 중재하는 ‘공정한 심판관(fair referee)’ 또는 ‘공정한 조정자(impartial arbiter)’로 인식한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적 제도를, 역사 발전의 일정 시점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지배집단 또는 지배집단 연합이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ㆍ증진하기 위해 만든 계급지배의 수단으로 인식한다.

정부가 공정한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원인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기득권 친화적인 제도의 특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며, 제도를 관리하는 정치ㆍ행정체제 구성원들의 ‘공정성’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에 그 탓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행정기관의 18번 ‘전년도 기준’으론 시회불공정 심화시킬 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회적 제도는 기득권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속성을 지닌다. 행정기관이 일상적인 정책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전년도 기준’은, 분배의 관점에서 보면 부익부 빈익빈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비록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공정성을 지향하는 법률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행정부에서 시행령과 규칙, 그리고 내규와 지침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용이 왜곡되기 일쑤다. 또한 법안의 개정 과정에서 덧붙여지는 여러 단서 조항은 궁극적으로 그 제도의 주인인 지배집단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공정한 분배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재분배정책을 시행하는 일부 북유럽 국가를 제외하고는 소득분배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페이지(Benjamin I. Page) 교수는 <누가 정부로부터 무엇을 얻는가(Who gets What from Government)>라는 저서에서 미국 정부는 조세정책, 복지 프로그램, 정부지출 정책, 정부 규제 등을 통해 소득재분배 정책을 추구해 오고 있으나, 미국 사회에는 여전히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정부의 정책들은 총체적으로 보아 소득분배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설계된 정부의 여러 정책들은 부자들을 위한 다른 정책들에 의해 그 효과가 상쇄됨으로써 재분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부자들을 애지중지하지 말라”는 버핏이 한국엔 주는 메시지

세계적 부호 버핏(Warren Buffett)은 2011년 8월14일자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부자들을 애지중지하지 말라(Stop Coddling the Super-Rich)’는 칼럼에서, 워싱턴의 입법자들은 마치 멸종위기종(endangered species)처럼 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자신이 2010년 적용받은 소득세율 17.4%는 자기 회사직원들의 평균 소득세율 36%보다 현저하게 낮았다고 밝힌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득분배 개선 수단으로 조세제도를 주로 활용한다. 대부분의 정부는 세제를 개편할 때마다 조세의 공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버핏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공정한가’라는 물음과 이에 대한 답을 말한다면 무엇보다도 사회적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게 설계되고 관리되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입장이다. 우리 사회와 정부에 편재(遍在)된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을 비판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것을 바로잡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세계는 정치ㆍ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변혁의 계기를 맞고 있다. 사회적 소통방식의 혁명적 변화가 초래되고 직접민주주의 정치 방식이 활성화된 21세기적 정치 상황을 ‘민주주의 3.0시대’로 규정하였다. 이는 곧 대중이 정치적ㆍ사회적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장악한 집단지성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대중민주주의 시대에는 사회적 가치의 보다 평등한 배분이 가속적으로 추구될 수밖에 없다. 구성원들의 가치관 속에 녹아있는 정치적 평등 의식은 궁극적으로 여러 사회적 가치 배분에서의 평등 의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1년은 민주주의 3.0시대의 본격적 개막을 알리는 여러 사건들이 다발적으로 발생한 해다. 아랍의 여러 국가와 유럽의 여러 도시 그리고 미국 월가 등에서 다양한 양태로 폭발한 대규모 저항 운동은 SNS 등 사회적 미디어를 주된 소통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빈부격차 해소 등 경제적 평등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3.0 시대의 전형적인 변혁운동으로 규정될 수 있다.

소수 자본가들의 탐욕과 심화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규탄하는 월가의 “점령하라!(Occupy!)”는 시위는 이와 같은 변혁 운동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 평등’을 근본적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승자독식의 정글법칙에 기반하는 자본주의적 분배질서는 본질적으로 양립하기 힘든 제도다. 지난 수세기 동안 불안정한 조화를 유지해온 민주주의 제도와 자본주의적 질서는 민주주의 3.0시대를 맞아 진정한 정합(congruence)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정치ㆍ경제적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오늘날 여러 정치사상가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사회시스템은 평등과 배려의 가치를 공통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정부의 본질적 기능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제도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이다. 사회적 제도는 가치 배분의 원칙이 안정적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공정한 사회경제적 질서를 구축하는데 정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정치ㆍ행정체제는 그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권위 있게 배분하는 시스템이다.

평민들 풍부한 에너지 모은 로마공

한국사회는 중진국 함정에 빠져 들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사회가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게임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최종 산물의 보다 평등한 분배에도 더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적 게임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경제적 가치의 보다 평등한 분배를 위해서는, 제도를 만들고 관리하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불공정한 제도 구축의 시도들이 굳어지기 이전에 그 방향을 되돌려놓아야 한다.

공정한 경쟁 규칙은 특히 사회계층 간의 점증하는 갈등을 줄이고, 로마 공화정에서 보듯이, 평민 사회에 내재하는 풍부한 에너지를 사회 공동체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사는 진정한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공정한 경쟁규칙을 마련하는데 온 사회가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아울러 심화되는 계층 간의 소득 격차를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출범 두달을 맞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가 바로 여기에 모아져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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