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칼럼] ‘특채공화국’의 만화경
2010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유아무개 외교부장관 자녀의 특별채용 비리 사건은 사회적 가치배분의 중요한 권한을 행사하는 공무원 채용 비리의 전형을 보여줬다. 공무원의 자녀가 공무원으로 특채되고 사기업 임원 자녀가 해당기업 직원으로 특별 채용되는 세태를 비꼬아 우리 사회가 신라시대의 골품제, 인도의 카스트(caste) 제도와 같은 계급사회로 바뀌고 있다는 비아냥이 터져나왔다.
2010년 국정감사를 즈음하여 한 의원이 밝힌 내용에 의하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외교통상부에 신규 채용된 698명의 공무원 가운데 63%가 특별채용을 통해 들어왔다. 행정부의 다른 부처와 비교해 볼 때 외교부의 이와 같은 특채비율은 지나치게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특채의 규모도 그러하거니와 특채 과정의 비리를 보면 정부의 인사 절차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문란해질 수 있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당시 행정안전부의 감사 결과를 보면 외교통상부가 유아무개 전 장관과 전아무개 전 감사원장 등 고위 공무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면서, 전형요건 가운데 하나인 영어 성적표를 아예 제출하지도 않은 응시생을 채용하거나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면접위원을 자의적으로 선정·위촉한 사실이 확인됐다. 2006년 5급 공무원 특별채용에서는 전직 외교관의 딸 홍아무개씨가 탈락하자 합격권에 든 다른 응시생을 아예 한 급수 낮은 6급으로 임용한 다음, 새로운 임용절차를 거쳐 홍씨를 결국 5급 공무원으로 특별채용한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전직 외교관의 아들 김아무개씨는 ‘계약직 공무원’ 경력만 갖고 있었는데도, 2007년 일반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5급 특별채용 시험에서 합격했고, 같은 해 계약직 5급에 채용된 강아무개씨는 서류 전형도 거치지 않은 채 채용됐다는 것이다. 공정해야 할 공무원 채용이 그야말로 복마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특별채용비리 사건은 비단 외교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중앙부처와 국회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성남시는 전 시장의 비서와 선거캠프 관련자, 시의원과 공단이사장 자녀 등 20여명을 특별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천시의 경우는 아예 ‘특별채용 해방구’로 묘사될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하였다. 부천시 산하 부천문화재단의 경우에는 전체 직원 165명 중 30%에 달하는 46명이 전 시장의 친인척이나 측근, 시의원의 자녀로 채워졌으며, 시설공단 역시 직원 150명 중 24명이 도의원과 국회의원의 친인척으로 구성되고 채용 당시 기본적인 절차도 생략되었다. 심지어 2010년 5월에는 모집공고도 없이 직원 8명을 뽑았는데, 서류심사나 면접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은 서울시·부산시·경기도·강원도·전라남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별채용 비리는 대학사회도 예외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대학교는 2007년부터 4년간 직원을 특별채용하는 과정에서, 면접위원의 과반수는 외부인사로 구성하여야 한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교직원들로만 면접위원을 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이 법규를 위반한 채용절차를 통해 선발된 인원이 전체 특별채용 인원의 82%에 이른다.?
물론 특별채용제도 자체가 위법하거나 잘못된 제도는 아니다. 급격하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인력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공개경쟁 채용의 방법보다 자격을 갖춘 후보자간의 제한된 경쟁을 통하여 특별채용하는 것이 능률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화·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국제관계 전문 국가공무원을 특별채용하는 등 특별채용 직종의 범위를 크게 넓혀가고 있다. 문제는 절차의 투명성이나 기회의 균등성을 무너뜨리고 특권층의 자제들에게 특혜를 준 데 있는 것이다.
특채와 관련된 비리를 뿌리 뽑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별채용제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관리해온 특별채용전형을 중앙인사부처가 일괄적으로 관리하면서 비리가 스며들 여지가 없도록 채용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여야 한다. 그리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다면 특혜의 소지가 있는 특별채용보다는 공개경쟁채용제도를 확산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사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가장 훌륭한 제도는 공개경쟁채용시험임을 역사적 경험이 증언해 주고 있다. 공개경쟁채용시험제도는 동양에서는 과거(科擧) 제도의 형태로 수천년간 지속되어 왔으며, 영국에서는 1870년 추밀원령(樞密院令)에 의해, 미국에서는 1883년 제정된 펜들턴법(Pendleton Act)에 의해 공공부문의 인사원칙으로 정착되어 왔다.
사회적으로 큰 권한을 행사하는 관료집단이 특권계층의 자녀들로 대를 이어 채워진다면, 우리 사회는 특권집단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차지하는 신분사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공공부문의 신규채용이 공정경쟁이 아닌 특혜비리로 얼룩진다면 공정사회 구현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 사기업체의 경우에는 인사청탁에 의한 무능력자의 채용으로 기업체가 설사 부도가 난다 하더라도 기업주의 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 돌리면 그만이지만, 국민의 신탁에 의해 운영되는 공공부문에는 공개경쟁을 통해 가장 유능한 인재를 선발해야 할 공적 책무가 부여되어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 공개경쟁채용 제도의 골간이 흔들린다는 것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주요 계층이동 통로 가운데 하나로 기능해 온 ‘시험사다리’가 허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