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바람의 딸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아시아엔=이상기 기자] 바람의 딸 한비야씨는 자신의 책을 선물할 때 꼭 이렇게 쓴다. “지금 그 꿈 꼭 이루세요!” 국제홍보회사에 근무하다 어린 시절에 계획한 대로 걸어서 세계일주를 실현하기 위해 사표를 던지고 여행길에 오른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오지여행가 중 한 명이다.

그동안 그는 네티즌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 평화를 만드는 100인 등에 선정되었고, 2001년부터 10년 가까이 국제 NGO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했다. 재작년엔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고 주말엔 백두대간 행군을 할 정도로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한씨의 꿈은 가난한 나라에 도서관을 세우는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펴낸 책은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그건 사랑이었네> 등 꽤 된다. 그가 2005년 9월 1쇄로 펴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2009년 7월30일 151쇄를 찍기에 이르렀다. 줄잡아 30만권 이상이 팔린 것이다. 그는 어려울 때 자신의 책을 처음 출간한 ‘도서출판 푸른숲’에서만 책을 내고 있다.

그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이상기님께, 반갑습니다.^^지금 그 꿈 꼭 이루세요. Biya Han.(2011년 11월16일)”이라고 써 필자에게 선물했다. 이듬해 6월 저자와 필자는 중국 베이징에서 2박3일간 7끼 식사를 같이 하며 서로를 ‘평동’이라고 부르며 보낸 적이 있다. ‘평생 동지’라는 뜻이다. 필자가 말했다. “평동은 이름대로 정말 열심히 사십니다. 들판을 날아다닌다는 이름 그대로.” 저자가 답했다. “이상기 평동은 ‘함께 일으켜 세우는 사람’( ) 아닙니까?” 둘은 한참 웃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남들이 좀처럼 가지 않는 지역에 대한 한비야의 피땀 어린 탐험기다. 아프가니스탄, 말레이, 잠비아, 이라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네팔,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인도네시아, 북한 등이 이 책의 소재다. 독자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씨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저 먼지가 모두 밀가루였으면’ 하고 바람을 나타내면서도 ‘천막 교실에서 희망의 소리를 듣는다’고 반가움을 드러낸다. 그러다가 “지뢰를 모두 없애려면 천년이나 걸린다”는 말에 한숨을 내쉰다.

그는 24시간 감시대상이면서도 생존자들의 존재에 그저 고마워할 뿐이다. 에이즈가 범람하는 말라이와 잠비아에선 죄없는 아이들이 불치병에 감염돼 가는 것을 보며 눈물을 닦을 새도 없다. 이라크로 넘어간 그는 “평화를 실현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절절함을 남기고 되돌아온다. 한씨가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앗 살람 알레 쿰(당신에게 평화를)“ ”알레이 쿰 앗 살람(당신에게도 평화를)”뿐. 그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이런 인사를 주고 받으며 평화를 빌어보지만, 구호단체 직원도 철수해야 하는 아픔의 땅이 이라크였다고 말한다. 지금은 시리아가 이라크를 대신해, 전쟁과 분쟁, 살육의 고통 속에 휘말려 있다.

이 책 266쪽엔, ‘극한의 삶’이란 제목으로 로이타재단의 인도주의 뉴스가 잊혀진 세계 10대 긴급뉴스 현장을 발표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2004년께 일이다. 10위까지 순위를 보면, 1위 콩고내전, 2위 우간다, 3위 수단, 4위 에이즈, 5위 라이베이라와 시에라리온, 6위 콜롬비아, 7 위 체첸, 8위 아이티, 9위 네팔, 10위 말라리아와 결핵 순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세상 어딘가에서 7초에 한명씩 목숨을 잃고 있다. 이 10대 불행한 현장에는 끼지 않지만, 북한은 긴급구호 필요성이 매우 높은 나라로 꼽힌다. 만성적인 식량부족 때문이다. 한비야씨가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곳이다.

한씨 선친은 함경도 정평 출신으로 북한 사투리를 심하게 쓰고, 가자미식혜 등 고향음식을 즐겨들던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시다. 한비야씨는 북한땅에서 본 감자밭의 수백만 송이 하얀 꽃을 보며 상념에 잠긴다. 한알의 씨감자가 한번에 스무배 씩으로 불어난다. 감자 400만톤이면, 북한 식량 부족이 해결되고, 20만 정보의 감자밭에서 1정보 당 20톤만 나오면 된다는 계산을 꼼꼼히 해냈다. 구호팀장답다. 일주일 동안 머물며, 한비야씨는 북한의 감자꽃이 통일의 꽃으로 활짝 피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지금도 한비야씨는, 북한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던 후배 팀원이 “팀장님 얼굴이 감자꽃같이 환해요” 하던 말이 자주 떠오른다고 했다. 희망의 싹을 북한에서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아시아지역의 구호현장 활동을 마치고 최근 귀국해 서귀포에서 저술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한씨의 내년도 계획은 무엇일까?

“바람부는 대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