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모자원고개 가는 길’···뇌성마비 아들 둔 ‘칠순 아빠’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모자원가는길_커버

[아시아엔=김아람 인턴기자]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양은 다 비슷비슷한가 보다. 늘 지난 일을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누군가 인생은 여행이라 하였는데, 나의 지나온 세월은 하나씩 잊혀져 가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이 지나온 날이다.”(38p)

<모자원고개 가는 길>(2014, 이가서출판사)의 저자 우기복(70)씨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간간히 써오던 글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냈다. 그는 사회에 커다란 업적을 세운 사람도 아니고 엄청난 재력가도 아니다.

서울 변두리에 살면서 교회 장로로 살아가는 평범한 아버지다. 따라서 <모자원고개 가는 길>은 우리네 부모와 할아버지 세대 이야기인 셈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이제 갓 20대 중반에 들어선 필자에게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저 책이나 사진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컴퓨터와 핸드폰에 더 익숙한 유년기를 보낸 필자에게 그분들의 삶을 온전히 공감하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책 한장 한장을 넘기면서 조금이나마 그 시간들을 짐작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삶이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한 사람이 지나온 몇십 년의 세월을 담은 것이니만큼 그의 글에서는 ‘삶’과 ‘죽음’이 멀지 않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어릴 적 떠난 동생 생각은 살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내 마음속에 걸리는 것은 이뿐이 아니지만, 어머니의 그 작은 바람을 들어드리지 못하고 작은 소원을 귀담아듣지 못한 것이 어머니에 대한 회한으로 나에게 남아 있다.”(192p)

한 사람의 죽음은 단순히 ‘죽음’으로 그치지 않는다. 남아있는 이들의 가슴 속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간다. 사실 내게는 조금 먼 감정이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글의 곳곳에 배어 있는 그리움에 마음이 시큰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지나온 세월, 지나간 날들이 거저 지나간 것이 아니고 아픔과 질고의 시간이어서 잊을 수 없는 것이다.”(13p)

때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저자 우기복씨는 어릴 적부터 신춘문예 등단의 꿈을 품고 살아왔다고 했다. 아직도 그의 가슴은 신춘문예 소리만 들어도 설렌다고 한다. 살면서 일기 한달 쓰기도 어려운 법인데 지금까지 꾸준히 써왔던 글이 책 한권이 될 정도면, 정말 글쓰기를 좋아하고 열망하는 분임에 틀림없다. 그의 열정을 짐작할만한 대목이 있다.

-성남 수진리 문간방의 굳어진 꿈

-시절이 지날 때마다 도지는 신춘문예

“연말이 되면 일간지 1면 사고(社告) 난에 나오는 ‘신춘문예’ 공모를 기다리는 문학도의 마음같이 언제나 신문을 보면 마음이 쿵쿵거릴 듯이 기쁘고 기대가 된다. 그것은 펼쳐질 세상에 대한 기다림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청년 우기복은 어느덧 아버지가 된다. 결혼을 하고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첫째가 ‘제용’, 둘째는 ‘제호’다. 둘째 제호는 특별한 아이다. 뇌성마비 지체장애 1급을 가지고 있다. 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제호 덕분에 온 가족이 함께 제대로 여행을 가본 적도 없다. 아내는 30년 이상 긴긴 시간을 집에서 제호만 돌보느라 마음 성할 날이 없었다. 이 때문에 종종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제호’는 우기복씨 집안의 ‘천사’다. 하루는 중학생이던 첫째 제용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참 행복해요. 죄 지어본 적이 없는 제호랑 사는 게 좋아요.”

제호를 바라보며 우기복씨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마다 자기 십자가가 있지만, 우리에게 지워진 제호는 사랑의 십자가이며 신앙의 힘입니다.’

제호가 어릴 적에는 이상한 몸짓이나 표정 때문에 밖에 데리고 나가기 꺼려진 적도 있다. 사람들 시선이 불편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 우기복씨에게 ‘제호’는 더 각별한 애정이 가는 존재다. 이렇다 보니 아버지한테 제대로 애정표현 받아본 적 없는 첫째 제용이 때때로 불만을 가진다는 걸 모르지 않는 아버지다.

제호에게 부모님은 마냥 보살펴주는 좋은 사람일지 몰라도, 첫째 제용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만도 않을 것이다. 아마 필자 역시 수많은 ‘제용’ 중에 한 명이 아닐까 한다.

필자는 부모님은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레 우리 엄마, 아빠인 줄 알았다. 당신들에게도 나처럼 철없던 소녀, 소년 시절이 있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건 겨우 최근의 일인데, 우기복씨의 글을 읽으며 필자의 부모님도 완벽할 수 없는 한 인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모든 장애아동의 부모는 소원이 한 가지 있다고 한다. “아이보다 하루만 더 오래 사는 것”. 우기복씨와 그의 아내의 바람이기도 하다.

“엄마 아빠가 건강해야 끝까지 너를 붙들어줄 수 있으므로 엄마 아빠가 제호보다 조금만 오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란다.”(333p)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정말 특별한 분인 저자 우기복씨가 <모자원고개 가는 길>을 통해 기록한 세월의 흔적은 바로 나의 부모님,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와 다름없다.

환경은 많이 다르겠지만 앞으로 내게 다가올 시간들일 지도 모른다. 저자 우기복씨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까? 아마 가족을 사랑하고 마음 한 구석에는 채 이루지 못한 꿈을 가진 ‘보통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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