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함동선 ‘분단시선집’···신경림·김지하와 달리 ‘탈이념 서정성 돋보여’

시에 대한 정의는 시인마다, 비평가마다 제각기 다르다. 그런데 시를 “가슴에서 머리로 가는 여행이다”고 정의하는 시인이 있다. 함동선(1930년~) 시인은 자신의 고향을 시집 제목으로 정한 <연백>(2013년 6월 작가세계)에서 그랬다.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 “세상에서 제일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라고 말씀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함 시인에게 시는 ‘감성에서 이성으로의 여행’인 셈이다. 그는 실향을 소재로 시를 쓰는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힌다. 그는 6.25 직후 경기도 강화섬에서 지척인 황해도 연백군 해월리를 떠나 월남한 실향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망향, 이별, 어머니, 귀향이란 시어들이 자주 나타난다. 그는 일찌감치, 연백중학 3년 때, 동인지 <지우>를 통해 시를 발표했다. 경기중학교 교지에도 작품을 발표했으며, 1950년 피난 시절 전쟁의 폐허와 그로 인한 방황을 형상화한 시들을 냈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시인은, 전쟁 후에 가난과 폐허, 고향 등을 주제로 미당 서정주의 지도 아래 작품 활동을 펼쳤다.

<함동선시선집>(2010년 5월, 도서출판 황금알)은 980쪽이 넘는 방대한 엔솔로지다. 팔순이 지나 낸 시선집에는, ‘우후개화’ ‘꽃이 있던 자리’ ‘눈감으면 보이는 어머니’ ‘식민지’? ‘산에 홀로 오르는 것은’ ‘짧은 세월 긴 이야기’ ‘인연설’ ‘밤섬의 숲’ 등 60년간 그의 시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다. 특히 책의 뒷부분엔, 영문과 중문으로 그의 시선을 번역해 영어해독 독자들도 그의 시를 맛볼 수 있게 했다.

미당 서정주가 그의 제 1시집 ‘우후개화’에 쓴 추천사는 이렇다. “우후개화는 그 정서의 섬세층에 대한 새 발견의 푼수에 있어서도, 우리 시에 많은 새 것을 기여하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금시 가지에서 따온 과실의 맛 같은 그의 신선한 감각능력을 좋아한다. 이렇게 시인이 무병(無病)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현대 문명의 복잡다단한 생활문명 속에 있어서 말이다.”

평론가 이상옥의 ‘분단시대와 함동선 시의 자리’ 평을 보자. “함동선씨는 분단시대의 대표적 담론을 쓰고 있다고 평가받는 민중 시 계열의 고은, 신경림, 김지하 등과는 다른 시인이다. 타 시인들이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워 정치적 운동성을 띄고 집단성을 드러내면서 저널리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결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에 비하여, 함동선의 시적 담론은, 매우 내재화되면서, 정치성, 운동성이 배제된 채 소리 없이 진행되어 온 것이다.”

다시 함동선의 시 ‘연백’을 펼쳐든다. ‘북에서 온 편지 1, 2’ 몇 대목이다.

“동상두 살만하게 됏십니다
저가 두루미와 함께 연백평야서
칠십을 살앗으니께니
허수애비 생각밖에 없습디다
장연 봄 하신 말씸과
맛 조은 연백쌀과
막내이 삼춘 속 아프게 한 진달래꽃잎과
서나당 고개 넘어 산등세기 흙허구 설나무니
궁금한 거 몽주리 옇으니까니
펜지 봉투 이리케 묵직합디다
이 펜지 다 뜨구 방의 불 끄구서리
상기 살지 않은 날의 불 다시 켯답니다
구야산에 달뜨니 막내이 삼춘 보듯
개기 짖읍니다레”

시인의 어린 시절 추억과 고향을 떠난 회한이 사무쳐온다. 그는 지금도 60여년 전, 고향 떠날 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럴수록 더 생생하게 떠오른다 했다. 언젠가 고향이 바라다 보이는 강화에서 군인 망원경을 빌려 고향집 마당을 보며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본 듯하다고 했다.

“첫 옷 고름을 푼 남편을
산 타고 북으로 가고
나는 강 따라 남으로 내려왔는데요
피란살이 집 천장마다
볼우물에 고인 고향하늘 칠하고
(중략)
그날이 오면 첫날밤의 숨소리 찾아
경의선 개성역 지나 토성에서
황해선 협궤 철도의 기차타고
연안 온천역에서
떠날 때의 그 달구지를 기다릴 거에요”(귀향)

3년 이상 단절됐다 재개될 듯하다 다시 무산된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들은 함 시인 가슴은 설렘보다 더욱 미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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