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선묵혜자 스님 ‘그대는 그대가 가야할 길을 알고 있는가’
서울 삼각산 도선사 선묵혜자 스님은 지난 5월 초, 부처님 나신 곳인 네팔의 룸비니에서 성화를 채화해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남북관계가 꽉 막혀 이 계획은 미뤄졌지만, 스님은 전국 사찰을 돌면서 불빛을 밝히고 있다.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 산사순례 기도회’가 바로 그것이다.
열네살 때 청담 대종사님을 은사로 도선사에서 출가한 선묵혜자 스님은 청담학원 이사장, 불교신문사 사장을 역임하면서 틈틈이 <절에서 배우는 불교> 등을 짓고, <영원한 대자유> <마음 꽃다발〉<마음을 맑게 하는 부처님 말씀 108〉등을 엮어 펴냈다. 스님이 올 1월 지은 <그대는 그대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가>(아침단청)는 움켜 쥐고 채우는 대신 비우며, 남보다 나를 낮은 자리에 두라고 말한다. “강물에 놓아준 물고기가 다시 찾아오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처님의 이치며 세상사 이치로서 부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스님은 말한다.
스님은 “마음이 아프다고 하지 말라”고 한다. “마음이 바뀌면 온 우주가 다 바뀌고 온 삶이 다 바뀐다”고 한다.
1장 비움 2장 놓음 3장 낮춤 4장 인연 등 모두 4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한마디로 “비우세요, 놓으세요, 낮추세요, 그래도 절대 큰 일 나지 않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선묵혜자 스님은 은사인 청담 큰스님 말씀을 인용해, “우리들은 빈곤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다만 비밀번호를 모를 뿐. 비밀번호는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한다”며 “10억을 인출할 수 있는 비밀번호가 바로 우리들 안에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각 장마다 아름답고 간결한 시와 수필들로 채워져 있다. 책 제목으로 뽑힌 ‘그대는 그대가 가야할 길을 알고 있는가’의 시작과 끝은 진한 울림을 던져준다.
“길을 걷다가 문득 왜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문제를 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정작 내가 살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중략) 다만 걸어다가 뒤를 돌아본다면/ 그대 발자국이 보일 것입니다. 만약 그 길이 아니거든/ 다시 돌아올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 길이 맞거든/ 결코 흔들리지 않도록 힘내시길 바랍니다. 그대 어느 모퉁이쯤 돌아오고 있나요. 그대를 기다립니다.”
스님은 ‘기적’에 대해?일갈한다.
“한 스님이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선(禪)에 관한 법문을 하고 있었습니다.?청중들 중 한명이 불쑥 튀어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께서 제게 기적을 보여주신다면 저는 지금부터 불교를 믿겠습니다.’ 스님은 주장자로 법상을 탁 치며 말씀하셨습니다. ‘기적을 보여달라고?’ 그리고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대는 여기 오기 전에 무엇을 했는가?’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스님은 다시 주장자로 법상을 치며 말했습니다. ‘그것이 기적이니라. 아무 탈 없이 가족과 밥을 먹고 아무 탈 없이 두발로 여기에 와서 아무 탈 없이 법문을 듣는 것 이 모두 기적이니라.’ 그는 조용히 삼배를 하고 물러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국의 선불교를 미국에 알린 숭산 큰스님의 일화입니다. 지금 아무 탈 없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그대도 기적입니다.”(200~201쪽, ‘기적을 보여 달라고?’)
독자 여러분, 이제 좀 가벼워지셨나요? 선묵혜자 스님은 이렇게 에필로그에서 독자들에게 기원한다. “이제 그대가 가야할 길이 보이나요? 그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