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정신과 의사 이홍식 “중년남성이여, 울음을 참지 마세요”
“당신만이 당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에리히 프롬)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중년 이후 남성이 눈물을 보이면, ‘주책 맞다‘ ’‘푼수 없다’ ‘처량하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지만 여전히 중년 남성들은 가슴으로, 속으로만 우는 경우가 많다.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로, 정신과 의사인 이홍식 박사는 “눈물이야말로 남자에게 자기 사랑의 치유를 해주는 힘”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존심을 잃고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고 있는 중년 이상의 남성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눈물은 남자를 살린다>(2012, 12. 다산북스)를 썼다고 했다.
이 박사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중년들은 압축성장의 산업화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당연시해 온 결과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 세대다. 아니 어쩌면 사회구조가 돌아보지 못하게 만든 희생양인지 모르겠다. 성취와 인센티브의 자발적인 노예가 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꿈은 무엇인지,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안중에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힘없이 살아온 세대다. 자신의 신분상승과 함께 가족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아왔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명함이란 가면을 벗게 될 때, 소속감이 없어지고 이제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몹시 당황스럽다.”
이 책은, 특히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즉 △평생 회사와 가족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 △자신을 위해선 양복 한 벌 사 입지 못한 사람들 △울고 싶어도 맘 편히 울어보지 못한 사람들 △사표를 참고 또 참으며 손에 쥐고 살아온 사람들 △그렇다고 아내와 자식으로부터 존중도 못 받은 사람들 △지금 자신도 불안한데 퇴직 후 30년을 돈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
이 교수는 2003년 한국자살예방협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았다. 이 후, 그가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제정한 ‘자살보도준칙’은 자살예방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故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4년 그에게 장관상을 수여했다. 이 책은 이 교수가 상담과 정신과 치료과정에서 발견하고, 깨달은 사례를 중심으로 적고 있다.
저자는 “울고 싶을 땐 울어라. 피로사회의 덫, 벗어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며 “이 삶이 다하도록 사랑하며 살자”고 외친다. 결론은 이렇게 맺는다. “나는 변하고 싶다.”
자신이 직접 촬영한 어느 섬을 배경으로 한 사진 아래,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평생을 열심히 달려왔다. 참고 또 참으며 죽어라 일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회사에서도 집안에서도 외톨이가 되어있다. 나는 왜 열심히 살아왔는가, 내 삶은 지금 어떤가.”(42~43쪽)
그에 따르면 “중년이란 ‘태어나서부터 오늘까지 얼마나 되었나’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나’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사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면 시간이 아까워지고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과거를 돌아보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과거의 자신을 잊어버려야만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87쪽)
이 교수는 그다지 술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지만, 한번 하면, 두주도 불사한다. 하지만 예순 넘어 술을 자제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했다. “알코올 중독자의 95%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습관적 음주 때문에 직장을 잃었다. 어떤 문제에 대한 회피수단으로 술을 마신다면 술 의존증이 시작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120~121쪽)
그러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 한둘이 아니다. 좋은 음악, 맛있는 음식, 사랑하는 자녀와의 통화, 한강변에서 자전거 타기, 호흡명상 등등. 저자는 “자식과의 대화는 늘 쉽지 않다”며 미국 감리교의 목사 아이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 일부를 소개한다. 편지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다 주지 마세요 △저는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알아요 △엄격하면서 확신을 가져주세요 △제가 잘못했을 때 조용히 타일러 주세요 △때론 그냥 잘못을 저지르도록 내버려두세요 △잔소리를 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물어볼 때 진지하게 대답해 주세요 △일관성을 지켜주세요 △잘못했을 때는 사과를 해주세요.
이 교수는 자식과 아버지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그들이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는 단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식과 대화가 안된다고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다. 농사가 망할까봐 농사를 안 짓지는 않는다. 자식 농사는 그보다 더한 것이다.
이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이 결국 자신에게 외치는 메아리라고 고백한다. “50대에 접어들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살아가려고 소통, 배려, 명상, 종교 등에 관한 책을 읽었으나, 실제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자기주장과 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이가 먹으면서 점점 고집이 세지고, 대접받기를 바라며 나이를 훈장처럼 여기는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