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최문영 첫 소설집 ‘대웅을 기다린, 이차돈’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지난 3월 말 책 한권이 배달돼 왔다. 겉봉에는 내 이름과 ‘최문영 소설집’ <대웅을 기다린, 이차돈>이라고 적혀 있었다. 낯선 이름이다. 불교문예출판부인 것을 보니 혜관스님이 보낸 것으로 짐작했다. 표지와 차례, 뒷페이지와 책날개에 담긴 문장들만 읽고 책상 위에 던져놓았다.
종종 그렇듯이 내게 배달된 책을 주말에 다시 살펴봤다. 저자 소개란을 보니 올해 <월간문학>에 소설로, 2016년에 <문학의봄>에 수필로 등단했다고 돼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최문영국어논술교습소’를 열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속지 디자인은 투박해도 커버 그림(김성로 화백)이 무척 강렬하고 가지런했다. 작가에게 전화해 “당신이 독자라고 생각하고 책소개를 해달라”고 했다. 작가는 준비하고 있던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두편의 글을 카톡을 통해 보내왔다.
“최문영입니다. 안녕하세요? 부족한 사유를 부족한 그릇에 과감하게 담고는, 또 대담하게 보여드립니다. 읽어 주실 분들께 한편 죄송하기도 합니다. 글을 쓰면서, 나름 제가 써야 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고 제 스스로 제게 사명을 부여해 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잘난 척하는 제 자신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 안에 있는 교만과, 또 그 옆에 간신히 숨 쉬는 사명감, 그 모든 것이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읽어 주십사, 이렇게 용기를 내어 편지를 써 봅니다. 부족한 제게 격려와 채찍이 되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봄이 그 강한 겨울을 이겨내더니, 드디어 제 자리에 왔습니다. 그 봄도 곧 떠나게 되겠지요? 저도 그렇게 살다 그렇게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작가 최문영이 그의 첫 소설집에 나온 세 작품, <장애별> <꿈을 꿀 수 없는 여자> <대웅을 기다린, 이차돈>에 대한 自評 겸 辯이다.
“이 책은 두 편의 중편소설과 단편소설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크나 큰 우주의 이치와 그에 대한 순응적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자기 주관 없이 무비판적으로 정보통신에 빠져드는 것의 위험을 말하고 싶었다.
우선 <장애별>은 우주적 이법이나 절대자의 눈에서 봤을 때 모든 이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란 것을 말하고 싶었다.
<꿈을 꿀 수 없는 여자>는 어찌 보면 식상할 수 있는 소재인, 꿈이 아닌 돈과 권력을 추구하던 한 인간의 공허하게 변해버린 삶을, 정보통신 기술과 연계하여 좀 색다르게 다루려 했다.
그리고 이 소설집의 대표작인 <대웅을 기다린, 이차돈>은 이차돈의 순교가 지극히 理致的이었다는 것을, 구도자적 이차돈의 모습에 집중하며 그렸다. 이를 위해 신과 인간을 진실로 매개하지 않는 가짜 허웅이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은 반드시 필요한 내화였다. 하여 아주 예전부터 막연하게 구상하곤 했던 야인신녀 ‘호랑이 여자’를 모티브로, 내화를 구성했다. 내화는 이차돈이 대웅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로 작용한다. 그리고 나름 이차돈의 가족사를 역사적 사실 안에서 촘촘하게 재구성했다. 이차돈은 내화와 주변 인물들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구도자적 자질을 키웠다. 그리고 부처님을 위해 자신이 가장 가치 있게 죽을 수 있는 때를 죽음의 순간으로 선택한다. 이차돈의 순교는 신라를 불국토로 만들었고, 삼국통일을 이끌었으며, 통일 후 삼국의 민심을 통합시켜 진정한 통일을 이루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분명 그의 순교가 자연의 이치에 가 닿았다는 증거다. 그가 순교할 때 異蹟의 존재 여부보다도 더 중요한, 그의 순교 자체가 지닌 내재적 이적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들이 구도자적 이차돈, 가장 이치적인 그의 순교를 쓰게 한 이유였다. 그 과정을 통해 이차돈이 간절히 구하는 그 대웅은, 실은 이 작품의 보이지 않는 실질적 주인공임을 말하고 싶었다. 이차돈의 죽을 때마저도 결정하는.”
이 책을 낸 불교문예출판부 편집진은 뒷 커버에 <대웅을 기다린, 이차돈>의 아래와 같은 대목을 실었다.
“두렵지 않느냐?”
“자기 목숨을 앞에 두고 두렵지 않는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오늘 제가 죽어 그 목숨 위에 숱한 연꽃송이들이 피어난다면, 그래서 내일 이 나라에 아름다운 불국토의 아침이 밝아오고 임금과 백성이 편안해진다면, 어찌 제 한 목숨을 아끼겠습니까?”(하략)
신인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피눈물 흘리며 쓴 한 편의 소설이 독자와 공감하며 독자에게 위로와 감동을 준다면 글쓰기는 두려워만 할 일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