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블루게이트’, 진실로 향하는 문

<블루게이트>의 ‘블루’는 청와대를 의미하는 동시에 슬프고 우울한 저자 장진수 개인의 느낌 표현, ‘게이트’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빗대기 위해 사용한 표현.

“자공이 정사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풍족하게 하면, 백성이 믿을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꼭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블루게이트>(장진수 저, 오마이북. 2014년). 책 제목이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블루’는 청와대를 의미하는 동시에 슬프고 우울한 저자 장진수(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개인의 느낌을 표현했고, ‘게이트’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빗대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라고 했다. <블루게이트>는 저자가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의 증거 인멸에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하던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느꼈던 감정들, 사건 관련 인물들과 나눴던 대화를 세세히 기록했고, 사건에 대한 진실을 세상에 폭로하는 과정까지 담았다.

필자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가 한창 대입준비중이던 고교시절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어쩌면 ‘정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관심이 가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단 공무원이 배치받은 부서에서 일하기 위해 윗사람에게 돈을 바쳐야 한다는 것,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각종 협박과 뻔뻔한 요구로 법에도 없는 승급 규율을 만드는 것, 검경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 진술 거부와 묵비권 행사가 최고임을 부하 직원에게 가르치는 것, 진실을 고백하려는 자에게 고백으로 인해 모두가 다친다고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머리끝부터 묵직한 쇳덩이가 짓누르는 죄책감의 무게를 받으며 양심을 고민했다는 것 등등. 이런 일들은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무관이 어떤 직책인지도 모르고 읽은 필자에게 책이 가져다준 ‘일침’은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한 일을 노무현 정부의 탓으로 돌리려는 것도 참 비겁하고 한편으로는 가관이란 생각이 들었다. KB 한마음 대표 김종익이 MB정부의 민영화와 4대강 사업 등을 비판하는 글을 쓰고 ‘쥐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자 MB정부는 그를 불법사찰하고 범죄자로 몰았다. 이들의 검은 권력을 포장하는 기술은 과연 혀를 내두를 만했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사찰하고 범죄를 조작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섬기겠다고 욕쟁이 국밥집에서 태연히 서민인 척하는 모습에서 과연 진심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비단 정부 탓만 할 것도 아니다. 정치권력에서 독립해 수사해야 하는 국가기관인 검찰이 증거 인멸의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 뒤인 닷새가 지나서야 수사를 시작했다. 압수수색 결과물도 달랑 디스크 3개와 상자 하나뿐.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의지가 애초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무고한 장진수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검찰에게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 장석명 비서관은 일방적으로 거짓 주장을 펴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진실인양 보도했다. 장석명 비서관의 주장이 언론을 타는 동안 교묘하게, 장진수는 잠수를 탄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고3 때 “검찰이 어떤 곳인지 아직 너네는 잘 모른다”는 문학 선생님의 말씀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나중에 장진수의 고백으로 검찰이 재수사를 했지만 정작 사건의 ‘몸통’은 건드리지 않았다(아니 못했다란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찝찝함을 넘어 서글프기만 하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는 ‘인과응보’, ‘자업자득’이란 사자성어가 통하지 않는 세계가 있었다. 내가 몰랐던 세계…

국가기관이 동원된 불법 행위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금도 어디서, 얼마나 진행되고 있을까. 국가는 국민을 콩인지 보리인지도 구분 못하는 존재로 아는 걸까. 어떻게 그런 정신과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것일까. 진흙탕의 흙이 가라앉았다고 흙탕물이 맑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그 맑지 않은 물에 비친 모습이 곧 그들이 속해있는 국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란 걸 2500년전 공자는 일찌감치 예고하고 있다.

자공이 정사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풍족하게 하면, 백성이 믿을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꼭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군대를 버려야 한다.” 자공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꼭 버려야 한다면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양식을 버려야 한다. 예부터 누구나 죽게 마련이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장진수는 윗사람이 시키면 아무 생각 없이 복종하고 그에 대해 의심도 갖지 않는, 순수하지만 영혼없는 공무원이었다. ‘나는 그동안 윗사람이 시킨 일이라면, 비록 100% 완성해내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하는 시늉만큼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알아왔기 때문에 일단 뭐라도 해야 된다고만 생각했다(P.98)’ 국무총리실에선 이런 사람을 뒤에 두고 진즉 계산이 끝난, 각종 약은 수법들과 언행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그들의 욕심이 한 사람을 나락으로 내몰았다. 자신들의 출세와 권력을 위해 저질러 놓은 일들을 일개 부하 직원에게 다 뒤집어씌우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1C,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 이 단어들이 무색할 만큼 후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가 이런 ‘의인’ 장진수를 미운오리새끼로 만들고 있었다.

정의를 위해 진실을 밝히는 일은 매우 어렵다. 장진수는 개인의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했고, 처자식을 달고 사는 가장으로서 먹고 사는 일에 지장이 있진 않을까 무척이나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만의 회색시대를 벗어나 ‘국민을 위한 진짜 공무원’으로서의 양심을 택했다. 책에서 그는 폭로한 것에 전혀 후회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고백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을 거라고 자신했다. 진실한 마음은 감추려 해도 저절로 밖에 드러난다. 그의 진실한 마음이 용기를 불렀고 그 용기는 나를 비롯한 독자들이 이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게 해줬다. 다시 말해, 한 정권의 추악한 행태를 절절히 느끼게 해줬다. 이제는 우리가 고단했을 장진수를 위로해야 한다. 우리가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하고, 진실로써 역사를 읽어야 한다. 그래야 후손들이 역사를 배울 때, 우리가 당당하게 이 사건은 ‘민주주의의 오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 김란향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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