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단단하고 고요한 ‘침묵의 벽’ 세우다
[아시아엔=윤지영 나눔문화 글로벌평화나눔 팀장] 매번 이사할 때마다 느끼는 곤혹스러움은 나만의 것일까? 부동산 시세와 내 경제적 형편을 적당히 맞춰 골라간 집은 ‘정착하는 곳’이 아닌, 때가 되면 또다시 떠나야 하는 ‘거쳐가는 곳’이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죽을 수 있는 ‘오래된 집’은 너무나 먼 꿈이다. 대대로 물려 내려온 오래된 물건들이 내 몸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허황된 장식은 일체 필요 없는 그런 안정감 있는 공간도 꿈꿔보지만, 나에겐 그런 물건도 없다.
뿌리가 없어 수없이 옮겨 다녀야 하고, 취향 따라 돈으로 구입한 새 물건으로 채워야 하는 이런 공간에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정신’은 어떻게 될까? 이 속도 빠른 세상에서 ‘난민’처럼 부유하며 단 한번뿐인 인생을 스쳐가듯 살고 있다는 불안감, 나도 언제든 ‘새것’으로 교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젖어 살지 않을까?
지나친 비약인지 몰라도, 나는 자주 그런 불쾌한 감정에 스며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라는 물음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낯선 새집에 들어설 때마다, 이웃의 꽉 닫힌 대문을 볼 때마다, 창문 밖 도시의 삭막한 풍경을 볼 때마다 그리고 재개발로 내 소중한 기억까지 철거되는 것만 같을 때 그 물음은 간절해졌다. 때마침 헌책방에서도 구하기 힘든 이 책이 20주년 개정판으로 나와 반가웠다. 10여년 전쯤 읽었던 이 책의 내용에 대한 기억은 흐릿했지만, 그때 느꼈던 놀라움, 온갖 상념으로 답답했던 가슴이 훤해지던 그 느낌은 여전히 생생했다. 20년 전과 그대로인 표지, 하지만 더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진 책. 출판사도 <빈자의 미학>을 고치거나 더할 것이 없는 ‘고전’이라 여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저자의 후기를 보니 더욱 감동이다. 저자는 지난 20년 동안 <빈자의 미학>에 담긴 말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무거움을 안고 있었고, 강박 또는 두려움으로까지 다가왔기 때문에 그동안 숱한 복간 권유를 거절했다고 한다. ‘언’과 ‘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뻔뻔함’의 세상과는 다른 삶의 태도다. 기분 좋은 햅틱의 표지 위에 새겨진 <승효상 – 빈자의 미학>이라는 붉은 글씨를 자꾸만 손으로 어루만지게 된다.
<빈자의 미학>은 건축 전문 책만은 아니다. ‘삶의 철학서’에 가까운 이 책은 우리를 빚어가고 있는 이 시대, 이 장소와 시간을 넓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불행한 사태가 어떤 모습인지 건축을 통해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땅에서 영겁의 세월 동안 축적해온 정신도, 정서도, 문화도 다 버리고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 속에 뒤범벅이 되어 있는 ‘졸부의 꿈’, ‘내 영역을 지키는 것’에만 몰두한 각자도생의 삶,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그 ‘허무의 모습’을 말이다. 이 책이 출간된 이듬해엔 IMF 외환위기까지 닥쳤다.산산이 무너진 ‘물질적 부’의 꿈. 그 충격파를 흡수할 수 있는 정신과 가치, 관계의 부재는 개인에게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우리는 지금도 겪고 있다.
그런데도 다시 “잘 살아보세”라며 달려가야 할까. 공정한 분배에 대한 요구 또한 꼭 필요하지만, 이 역시 ‘물질적 차원’의 일이다. 2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비어 있는 것은 ‘삶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리하여 어떤 공간을, 어떤 삶의 방식을 만들어갈 것인가.
<빈자의 미학>에서 승효상이 찾고 있는 것은 ‘새로운 시대정신’이다. 그가 말하는 ‘시대정신’이란 “그 사회의 문화 창조를 주도하는 이념”으로, 그 시대만의 독특한 문화, 전통과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힘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 가치의 폐허 위에서, 그는 종자로 쓸 씨앗을 골라내듯 본인의 가슴을 울렸던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순례를 떠난다. 우리의 옛 마당과 종묘, 라 뚜레뜨 수도원, 자코메티의 조각, 추사 김정희의 글씨, 김환기의 그림 등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정신’과 ‘혼’을 길어 올린다. 그리고 이를 ‘빈자의 미학’이라 명명한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비단 건축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어서, 이 적응할 수 없는 세상과는 ‘다른 삶’을 구축하고 싶은 이들 모두에게 ‘방향타’가 되어주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은 새롭게 발굴해낸 이 ‘새로운 정신’을 어떻게 건축으로 구현해낼까? 그 엄청난 작업을 해내기엔 20년은 짧은 시간인지도 모른다. ‘거장’보다 ‘노장’이 되기 힘들다는 요즘 세상에서, 여전히 늙지 않고 자신의 첫마음이 담긴 ‘선언’에 ‘속박’ 되어 살아가고 있는 이 한 사람의 분투를 나는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다.
‘이해되는 것’보다 ‘살아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고 있는 이의 행보를 응원하며, 나도 그렇게 살아내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이 개정판에는 박노해 시인의 추천사도 실려 있다. 감옥에서 이 책을 읽었다는 시인의 글을 보면, ‘자기 선언’을 해버린 자의 운명에 대한 애틋한 동지애가 느껴진다. 시인의 20년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면 그의 책도 꼭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이 얇은 책에서 승효상, 박노해 두 인물의 이름을 한꺼번에 보게 되는 경험은 뭔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비밀을 공유한 듯한 느낌을 준다.
<빈자의 미학>의 마지막에서 강조하는, 거리의 아우성에 대항해 서 있는 ‘침묵의 벽’이 생각난다. 침묵의 벽은, “비록 소박하고 하찮은 재료로 보잘 것 없이 서 있지만, 본질의 문제를 안으며 중심을 상실하지 않는”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런 ‘침묵의 기둥’이 되어 서 있는 인물들이 분명히 있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제정신이 아닌 듯한 인물들의 발언에 화를 내고 체념하다 나까지 사나워지는 듯한 위기감이 들 때, 나는 이 책을 자주 꺼내 볼 것 같다. 일단 시원한 여백과 아름다움에 젖어들며 마음의 고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고, 긴 호흡으로 밀어가야만 하는 희망에 대한 믿음을 단단하게 다질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