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촛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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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이훈희 서평 블로거] 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 금서가 되었던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으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의 또 하나의 시집이다.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이름 박노해. 책의 뒷부분의 저자 소개를 보면 박노해 시인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하여 1991년 무기징역형을 받았으나, 1998년 석방되었고 후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다. 하지만 박노해는 국가가 주는 보상금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런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그의 시를 읽어보니 박노해라는 사람은 노동의 가치를 매우 귀하게 여기고 노동자의 수고를 인정하고 이해하고자 했던 인물임을 깊이 느끼게 된다.

%ea%b7%b8%eb%9f%ac%eb%8b%88%ea%b7%b8%eb%8c%802%eb%92%b7%ed%91%9c%ec%a7%80이 책에 실린 304편의 시를 하나하나 읽어가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든 것일까? 어느 시 하나 쉽게 읽고 넘길 수가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출간된 시집이기는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시대는 이 시들이 쓰여지던 때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역사는 뒷걸음질 치고만 있다. 그렇기에 박노해 시인의 시들은 괴롭게 읽힌다. 아프게 읽힌다. 슬프게 읽힌다.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찾아보려 하지만 결국 절망에 머물고 마는 이 시대의 현실이 너무 아프다.

박노해 시인은 여러 시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말한다.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도 절망스럽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을 앞둔 것 같지만,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더 넓은 지경으로 나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시를 읽어갈 때면 ‘그렇지. 그렇게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의 글들에서 눈을 떼고 현실을 바라보고 있자면 희망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작아져 버리는 것을 계속해서 경험한다. 그래서 더 아프고 또 아프다.

그가 말하듯이 “삶도 역사도 긴 호흡으로 살아가는 것”일진대,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되는 현실에 밀려 내 앞의 이익에만 골몰하게 되는 내 모습을 보기에 또 아프다. 나의 변해가는 눈빛을 박노해 시인이 바로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주식 시세와 아파트 시세를 따라다니는 내 눈빛, 타인의 시선과 TV 드라마를 따라다니는 내 눈빛, 내 눈에도 빛은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하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다보니 부끄러워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선악의 경계가 증발되어 버린”, “더 나쁜 악과 덜 나쁜 악이 경쟁하는”, “풍요로운 가난의” 이 시대에 나 하나를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힘든 싸움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박노해 시인은 ‘이 시대 최후의 식민지’가 되어 버린 나의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 준다. 절망스런 이 상황에 정직하게 대면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변해버린 내 눈빛을 어디로 향해야 그 잃어버린 빛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나는 생존의 굴레를 뚫고 치열한 탈주와 저항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박노해 시인은 내게 말한다.

요즘 절망스러운 이 나라에서 시민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대통령 비리가 불씨가 되어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지만 들풀처럼 번져나가는 시민 저항의 불꽃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내몸 하나 건사하기 위해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시민들은 마음속에 새로운 세상을 향한 작은 불꽃을 꺼뜨리지 않고 간직해 왔기 때문이리라. 마치 박노해 시인이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라고 한 말을 들은 것처럼.

지난 11월 12일 광화문광장 일대는 칠흑같이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을 죽이던 대한민국을 다시 밝히고자 하는 시민들의 촛불들로 가득 찼다. 이 촛불들이 쏟아내는 힘찬 함성에 둘러싸여 있으니 박노해 시인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서 썼던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무엇이었는지,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무엇이었는지,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무엇이었는지,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이해가 된다. 절망 가득한 어둠 속에서도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로 살아가던 시민들이 그 희망이었던 것이다.

박노해 시인의 눈은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우리의 현실이 절망스러운 것은 인정하지만 더한 고통에 아파하는 아프간,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의 약자들에게도 발바닥으로 찾아갔다. 전쟁의 폭력이 현재형인, ‘폭격이 음악같은’ 그곳에서 비폭력으로 저항하며 따뜻한 평화의 씨앗을 눈물로 심어가는 삶의 모습을 그는 내게 시를 통해 보여주었다. 어마어마한 자연재해로 인해 고통 받는 인도네시아의 아체에서 그는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울며 시를 쓴다. 오랜 울음이 그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이 304편의 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매일 먹는 양식처럼 곁에 가까이 두고 이 절망의 시대에 병들어 가는 내 영혼에 힘을 채워주는 음식으로 삼을 만한 글들이다. 내 삶이 더 이상 썩어가지 않도록. 내 가슴이 더 이상 말라가지 않도록. 내 머리가 나의 생존에만 집착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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