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박노해 시인과 ‘구덕초’의 사랑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민들레꽃을 구덕초(九德草)라고 한다. 국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원줄기가 없다. 잎이 뭉쳐나는데 그 모양은 무 잎처럼 깊게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4~5월에 노란빛의 꽃이 피며, 씨는 수과(瘦果)로 흰 관모(冠毛)가 있어 낙하산처럼 바람을 타고 멀리 흩어진다. 어린 잎은 식용으로, 뿌리는 해열제로 쓰인다. 우리나라, 중국, 만주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민들레는 앉은뱅이꽃이라고도 한다. 사립문 안팎으로 널려 피었다 해서 ‘문들레’라 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민들레로 불리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쓰디 쓴 나물이라 해서 ‘고채(苦菜)’, 봄이 되면 천지사방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해서 ‘만지금(滿地金)’이라 불렀다. 이름만큼이나 사연도 많고, 사연만큼이나 그 이름도 가지각색인 꽃이 민들레다.

또한 바람에 꽃씨가 날리는 모습이 머리털이 하얗게 센 노인 같다 해서 ‘파파정’이라고도 부른다. 또 줄기든 꽃대든 잘라보면 흰 즙이 나온다 해서 ‘개젖풀’ ‘구유초(狗乳草)’라 부르고. 옛 조상들은 아홉 가지의 덕이 있다 해서 ‘구덕초’라고 부른다.

그런데 구덕초는 사람들이 흠모하는 아홉 가지 덕을 갖추었다고 하여 얻은 이름으로 옛날에 서당의 앞마당에는 이 들 꽃을 옮겨 심어놓고 학동들이 조석으로 보고 인성(人性)을 닦는 도구로 삼았다. 이 하찮은 풀에서도 우리 인간이 본받아야할 덕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민들레 구덕초의 아홉 가지 덕을 알아보자.

첫째, 인덕(忍德)이다. 아무리 짓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배우게 했기 때문이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이 너무 인내력이 없어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둘째, 강덕(剛德)이다. 뿌리를 자르거나 뿌리가 뽑혀 마른 뿌리라도 땅에 심고 기다리면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본다. 이를 보고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셋째, 예덕(禮德)이다. 민들레는 잎 나는 순서에 따라 꽃대가 나온다. 이 피는 것을 보고 장유유서(長幼有序)와 같은 순서의 미덕을 마음깊이 새기게 했다.

넷째, 용덕(用德)이다. 흰 민들레를 무치거나 김치를 담아 먹고, 각종 약으로도 유용하게 쓰이는 것을 보며, 쓸모 있는 삶을 마음 깊이 새기는 것이다.

다섯째, 인덕(仁德)이다. 흰 민들레꽃에는 꿀이 많아 벌과 나비가 찾아오면 꿀을 나누어 준다. 무조건 베푼다. 정신 육신 물질로 베푸는 나눔의 미덕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여섯째, 자덕(慈德)이다. 흰 민들레의 잎이나 줄기에 상처가 나면 젖과 같이 하얀 빛의 물이 나온다. 이것을 보고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자애를 마음깊이 새기게 한다.

일곱째, 효덕(孝德)이다. 흰 민들레가 부모님의 흰머리를 검게 해주는 회춘 약재로 쓰인다. 이는 우리를 보고 효의 덕을 배우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여덟째, 의덕(醫德)이다. 민들레 즙을 내어 종기를 치료하며, 아픈 사람의 병을 낫게 한다. 여기서 민들레는 병을 치료하는 인술의 덕을 배우게 한다.

아홉째, 입덕(立德)이다. 씨앗이 낙하산처럼 바람을 타고 멀리 낮선 곳에 가더라도 잘 적응하고 잘 자란다. 이를 보며 자립정신과 자수성가의 의지를 배우게 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 땅의 민중들은 민들레처럼 살아왔고, 민들레는 민중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었다. 그러니 ‘민초(民草)’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초’야말로 민들레의 이름으로 가장 걸 맞는 것이 아닐까? 많은 시인들이 이러한 민초로서의 민들레를 시로 써왔다.

그 중 대표적인 시인이 아마도 박노해 시인이 아닐까 싶다. 그 시인 박노해의 ‘레바논의 민들레꽃’ 전문을 감상해 보자.

“나는 아직 이곳에 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이 잿더미 가 된/ 폐허 속에서

날이 밝으면/ 빵과 물을 구하러/ 폐허 더미를 기어 다니지만/ 레바논에 살아온 것처럼/ 끈질기게/ 끈질기게/ 폭탄의 틈바구니에서/ 끈질기게 살아 있는/ 민들레처럼

우린 아직 이곳에 있다/ 우린 아직 여기 살아 있다/ 우린 다시 일어서고 있다/ 주검 냄새가 진동하는/ 폐허의 레바논에서/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전쟁의 포연(砲煙) 속에서도 피는 꽃 민들레처럼 살아야 한다. 차라리 사람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비굴하게 살지는 말아야 한다. 고고한 백합, 정열의 장미꽃처럼 화려함보다 흔하디 흔한 민초의 자존심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역경 속에서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용기를 잃지 아니하고 구덕초의 덕을 실행해 가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갈 수 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