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말 많은 세상서 침묵의 지혜를 깨치려면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말을 함부로 하면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똑같은 말을 가지고도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은 서로가 말 뒤에 숨은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아가의 서투른 말을 금새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말보다 뜻에 귀 기울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침묵을 배경삼지 않는 말은 소음이나 다를 게 없다. 생각 없이 불쑥불쑥 함부로 내뱉는 말을 주워보면 우리는 말과 소음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씨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특히 정치권인사들의 말은 자꾸만 거칠고 야비해져가는 현상은 그만큼 내면이 헐벗고 있다는 증거와 다를 바가 없다.
수행인들에게 과묵이나 침묵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도 바로 그 내면이 헐벗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한 때 필자는 말이 조금 많았다. 당시 필자 권유로 원불교소설을 집필하던 <우담바라>의 작가 남지심(南智尋) 선생이 하루는 나를 보고 한 3개월 묵언수행(?言修行)을 해보라고 권해왔다. 내가 너무 말이 많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얼떨결에 묵언수행을 약속한 나는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사업을 하는 필자가 도저히 할 짓이 못 된다는 것을 불과 며칠도 못가서 깨달았다. 그래도 사나이 약속이니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명함만한 크기에 “묵언수행 중입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필담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란 글을 코팅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래도 하루 이틀 점차 시간이 흐르자 꽤 견딜만해져 갔다. 이를 악물고 해낸 3개월의 묵언수행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그 수확은 아주 컸다. 비로소 말 수를 줄이고 경거망동하는 짓은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고여 있는 지혜의 말씀을 비로소 들을 수 있다.
참선(參禪)을 하는 선원(禪院)에서는 선실(禪室) 안팎에‘묵언’이라고 쓴 표지가 붙어있다. 말을 하게 되면 서로가 정진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집단생활을 하다보면 때로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비를 따지다 보면 집중을 할 수 없다. 선(禪)은 순수한 집중인 동시에 철저한 자기 응시이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북쪽 타우라스산 독수리들은 산을 넘는 두루미들을 공격해서 배를 채운다. 두루미들은 하나같이 요란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독수리들에게 먹잇감을 알려주는 좋은 신호가 된다. 두루미들은 소리 내는 것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든 두루미들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작은 돌을 하나씩 입에 물고 하늘을 날아오른다. 입에 문 돌의 무게만큼 무거운 침묵이 두루미를 안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간다. 허무하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우리는 나이를 먹는 동안 소중한 추억들이 쌓이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륜이 쌓여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생겨난다. 또 다른 가족이 생겼고, 조금은 여유도 생겼다. 이와 같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일도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양생칠결(養生七訣)’이라는 것이 있다. 원(元)나라 추현(鄒鉉)의 ‘수친양로신서(壽親養老新書)’에 있는 노년의 양생을 위한 일곱 가지 비결이다.
첫째, 소언어양진기(少言語養眞氣)다. 말을 적게 해서 진기(眞氣)를 기른다는 뜻이다. 말수를 줄여야 내면에 참다운 기운이 길러진다. 쉴 새 없이 떠들면 폐의 기운이 소모되어 안에 쌓여야 할 기운이 밖으로 흩어진다. 그 틈을 타 나쁜 기운이 밀려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둘째, 계색욕양정기(戒色慾養精氣)다. 색욕을 경계하여 정기를 기른다는 뜻이다. 옛날 손사막(孫思邈)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정욕을 함부로 하면 목숨은 아침 이슬과 같다.(姿其情欲, 則命同朝露也.)” 정기를 함부로 쓰는 것은 생명의 뿌리를 흔드는 행위나 다름없다.
셋째, 박자미양혈기(薄滋味養血氣)다. 맛을 담박하게 해서 혈기를 기른다는 뜻이다. 기름진 음식은 피를 탁하게 해서 혈관을 막는다. 입에 단 음식이 몸에 해를 끼친다. 채식 위주의 식단이 피를 맑게 하고 정신을 상쾌하게 깨어나게 해준다.
넷째, 연진액양장기(嚥津液養臟氣)다. 침을 삼켜 내장의 기운을 기른다는 뜻이다. 좌선(坐禪)으로 수승화강(水昇火降)을 시키는 것이다. 물 기운은 끌어올리고 불기운은 내리는 것이다. 이(齒) 사이로 진액이 고인다. 이를 모아 삼키는 것이다. 그러면 얼굴이 윤활해지고 주름살도 안 생긴다.
다섯째, 막진노양간기(莫嗔怒養肝氣)다. 성을 내지 않아 간의 기운을 기른다는 뜻이다. 간은 감정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놀라면 간이 철렁하고, 겁 없으면 간이 부었다고 한다. 분노의 감정은 간의 기운을 치솟게 해 생체 리듬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
여섯째, 미음식양위기(美飮食養胃氣)다. 음식을 알맞게 해서 위장의 기운을 기른다는 뜻이다. 미(美)는 좋은 음식을 먹으란 말이 아니라 조화로운 균형을 취하라는 뜻이다. 건강에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서 위장의 부담을 덜어주고 조화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일곱째, 소사려양심기(少思慮養心氣)다. 생각을 적게 해서 심장의 기운을 기른다는 뜻이다. 쓸데없는 생각, 짓누르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지나친 생각은 건강을 해친다. 건강은 균형과 조화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말은 줄이고 감정은 가라앉혀야 한다.
우리가 노년에 들어와서 침묵의 지혜를 익히고 이 양생칠결을 실행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힘이 센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능히 이기는 사람이 천하 사람이라도 이길 힘이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