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대성당 집사 니콜라이가 왕실묘지에 묻힌 이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성실(誠實)이란 정성스럽고 참됨을 말한다. 마음이 솔직하고 맑고 밝고 훈훈하며 깨끗하여 거짓이 없는 상태다. 학창시절 학교 급훈(級訓)에 쓰여 있던 ‘자주, 근면, 성실’이 생각난다.
젊은 시절 이 ‘자주 근면 성실’이라는 단어를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저의 살아가는 자세는 바로 ‘성실’을 바탕하여 살아가려고 무진 얘를 쓰고 있다. 나는 특출한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학벌, 재산, 인맥도 별로 없다. 전형적인 이 시대의 소시민으로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평범하였던 제가 지금의 이 정도라도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실이라는 단어 하나였던 것 같다. 성실하지 못했던 젊은 시절 하는 일마다 잘 되는 일이 없었다. 흥하고 망하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도 없을 정도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지금 되 든 안 되든 성실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하고부터는 성실 하나로 살아왔다. 그래서 좌우명(座右銘)이 ‘지성여불’(至誠如佛)이다. ‘지극한 정성이 곧 부처’라는 뜻이다. ‘덕화만발’을 쓰면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덕화만발’을 멈춰본 적이 없다. 잘 쓰든 못 쓰든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쓰기와 카페를 드나들며 그저 성실 외곬의 삶을 살아왔다.
어떤 교수님의 글에 이런 말이 있다. “성공이란 성실이라는 밭에 유능이라는 나무를 심는 것이다.” 세상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실은 무슨 일을 하든 가장 중요한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성실한 것은 미련하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다.
그러나 성실한 사람은 남들에게는 한심하고 꽉 막히고 답답한 사람으로 여겨질지라도 결국에는 큰일을 내는 사람은 바로 성실한 사람이다. 성실하다고 전부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대개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유능한 사람이 성실한 게 아니고 성실한 사람이 유능한 것이다.
영국 런던의 캔터베리대성당에 니콜라이라는 집사가 있었다. 열일곱 살에 성당을 관리하는 성당집사가 되어 평생을 성당 청소와 심부름을 했다. 그는 성당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맡은 일에 지극정성을 다했다.
그가 하는 일 중에는 시간에 맞춰 성당 종탑의 종을 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성당 종을 얼마나 정확하게 쳤든지 런던 시민들은 도리어 자기 시계를 니콜라이 집사의 종소리에 맞추었다. 그가 그렇게 성당에 열심히 일하면서 키운 두 아들은 캠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수가 되었다.
어느 날 두 아들이 아버지 니콜라이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이제 일 그만 하세요.” 그러나 니콜라이는 “아니야, 나는 끝까지 이 일을 해야 해.” 그는 76살까지 종을 치며 성당을 사랑하고 관리하였다.
그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이 그의 임종을 지켜보려고 모였다. 그런데 종을 칠 시간이 되자 일어나 옷을 챙겨 입더니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 종을 쳤다. 얼마간 종을 치다 니콜라이는 종 밑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감동을 받고 영국 왕실의 묘지를 그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귀족으로 대우해 주었다. 모든 상가와 시민들은 그날 하루 일을 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심지어 유흥주점도 문을 열지 않자 자연히 그가 세상 떠난 날이 런던의 공휴일로 되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성당의 종을 쳤던 그가 죽은 날이 런던의 공휴일이 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에 수많은 성직자들이 죽었으나 왕실의 묘지에 묻히지 못하였다. 그러나 단지 하찮게 보이는 성당의 종을 성실하게 친 니콜라이는 왕실의 묘지에 묻히는 영광과 자기가 죽은 날이 공휴일이 되는 명예도 함께 얻었다.
신의(信義)와 성실의 인물 가운데 제갈량(諸葛亮)이 있다. 유비(劉備)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그의 군사(軍師)가 되어 많은 활약을 했다. 유비는 부하이지만 항상 공명을 예로써 대하였고 공명 역시 유비를 진정한 충심으로 대하였다. 공명의 성실함과 유비의 인덕(仁德)으로 유비의 부하들은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명의 지략이 한 층 더 높게 발휘될 수 있었다.
마땅한 땅도 없이 떠돌아다니던 유비를 손권을 속여 조조와 싸움을 붙이고 기회를 노려서 형주를 얻고 익주를 평정하여 천하를 삼분한 것은 공명의 성실함이 없었던들 절대 가능한 얘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유비 사후 공명은 유선의 군주적 자질이 부족한 것에 크게 실망을 하면서도 충심으로 유선을 대해 유비와의 약속을 지켰다.
공명은 사마의(司馬懿)에 비해 항상 부하들에게 신임을 얻었다. 신의와 성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부하들이 모두 죽음으로써 공명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던 것이다. 성실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에 하찮은 일은 없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의 의무나 직무에 성실하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나 역시 남은 여생 성실의 화신(化身)이 되어 성실이라는 나무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싶다. 그것은 점차 멀어가는 나의 눈이 감기는 그날까지 그리고 내가 이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그저 성실하게 ‘덕화만발’을 쓰다가 떠나면 그 이상의 행복과 영광은 아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