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대도무문’ 집착과 ‘불통의 대명사’ 박근혜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일세를 풍미(風靡)하던 거산(巨山) 김영삼(金泳三, 1927~2015)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0시22분께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서거(逝去)했다. 그분의 평소 좌우명이 ‘대도무문(大道無門)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긴 말이 ‘통합과 화합’이라고 한다.
‘대도무문’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正道)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의미로, 누구나 그 길을 걸으면 숨기거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분에게 이 문장이 유명해진 계기는 1993년 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의 좌우명인 ‘대도무문’을 붓글씨로 직접 써서 선물했고, 클린턴은 그 의미를 물었다. 이에 당시 통역이 “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도무문은 본래 송나라 선승 혜개(慧開, 1183~1260) 스님의 화두(話頭)를 모은 책 ‘무문관’(無門關)’에서 비롯됐다.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대도에는 문이 없으나 갈래 길이 천이로다./ 이 빗장을 뚫고 나가면 하늘과 땅을 홀로 걸으리라.)
그런데 이 말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큰 길엔 아무런 막힘이 없다”는 의미는 원래 혜개가 설한 뜻과는 사뭇 다르다. 혜개는 “도를 닦는 것은 쉽게 보이지만 옳은 길을 찾기는 어렵다”는 뜻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이 생각이 든다.
대도(大道)라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도 광대무변(廣大無邊)하기 때문에 우주법계(宇宙法界) 어느 곳에라도 부처님 가르침이 충만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불심(佛心)이나 불성(佛性)이나 이러한 것은 어디는 있고, 어디는 없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지옥에도 천국에도 있으며, 부처님의 그 불심, 불성은 없는 곳이 없다.
인간만 불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구루에도 있고, 극락에도 있으며 아귀(餓鬼)에게도 심지어 개에게도 불성은 있다. 그러니까 어느 것도 불성이 없는 곳이 없다. 따라서 부처님 법은 어디에나 다 있는 것이다. 그리고 팔만사천법문은 모두 무문가입(無門可入)이라 문마다 다 통하는 법이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수행을 하는 데에 하나의 방법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내 것이 옳다 네 것은 그르다 국집(局執)하면 바로 그것이 법집(法執)이다. 집착하는 그 자체가 벌써 우리 마음을 우매하게 만든다.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에게 어느 제자가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었다. 선사는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마음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또 다른 제자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마음이 없다면 부처도 없다”고 했다.
파도는 쉼 없이 바다에게 말 하건만 바다는 말이 없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댄들 덧없는 것이다. 햇빛을 소리 없이 세상을 금빛으로 물들이지만, 세상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광활한 하늘, 텅 빈 바다, 모래,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건만, 인간은 나 홀로 번뇌(煩惱)에 잠겨 바닷가에 서성이며 그 무엇인가를 어리석게 찾아 헤매고 있다.
원래 무(無)다. 원래 공(空)이다. 그러나 바람과 나무는 항상 겨루고 있다. 세상은 너무나 적막한데, 누군가는 비뚫어진 눈을 가지고 있어 혼란스럽다. 우리 인간에게 이 짝짝이 눈이 없었던들 광활한 공간과 푸른 바다, 하얀 모래밭과 구름 한 점 없는 청정한 하늘이 끝없이 펼쳐졌을 것인데 말이다.
최근 여러 언론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이미지가 ‘불통’ ‘오만’ ‘독선’ 그리고 ‘나 홀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설사 절반만 그렇게 본다 하더라도 왜 우리의 대통령이 이런 이미지를 가져야 하는 것인지? 대통령이나 정부를 반대하는 절반의 사람들도 다 대통령이 품어야할 이 나라의 백성이다.
우리가 서로를 적대시 하는 한 일등국가의 염원은 요원하다. 반드시 이 나라는 ‘통합과 화합’이 아니고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 갈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이룩한 나라이고 민주주의 인데 또다시 그 옛날 암울했던 시기로 돌아간 데서야 말이 되는가?
그것이 평생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염원이고 온 국민이 받들어야 할 귀중한 화두(話頭)다. 대도에는 문이 따로 없다. 문을 열고 나가 ‘통합과 화합’을 실천하는 사람이 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