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챔프 제이슨 데이, 타이거 우즈 꺾고 ‘이류인생’ 탈피한 속얘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나는 적어도 하루에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졸문(拙文) ‘덕화만발’을 쓰거나 카페에 올라온 글에 대한 댓글을 달거나 저를 위해 올려주신 댓글에 대한 답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이 가까워 오면 컴퓨터가 다운된다. 그러면 다시 ‘리셋(reset)’을 하여 새로운 기분으로 글을 쓴다. ‘리셋’은 데이터 처리 기구 즉,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미리 정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말한다.

삼국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관우가 허망하게 죽자 장비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장비는 분노에 차 술을 퍼마시고 부하에게 매질을 하다가 허망하게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유비마저 절치부심하다 세상을 떠난다.

이제 촉(蜀)의 운명은 제갈량의 두 어깨에 달려있다. 북벌(北伐)에 나선 제갈량이 오장원두에서 위(魏)나라와 일전을 앞에 두고 있다. 그때 갑자기 돌풍이 몰아치더니 촉의 군기(軍旗)가 부러지고, 제갈량은 그것을 자신의 운명이 다한 것으로 보고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촉의 운명도 그것으로 끝이 난 것이다.

사마의(司馬懿)는 삼방곡에서 제갈량의 화공(火攻)을 받는다. 모진 화공은 그의 모든 군대와 식량을 삼켜버렸으며 사마의 군대의 전멸은 시간 문제였다. 사마의의 죽음도 목전에 다가왔다. 그런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기가 아님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마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사마의는 하늘마저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평생 조조와 그의 친족들에게 의심을 받고 무시 받아왔으며, 죽은 제갈량에게도 미치지 못한다는 수모를 받아 온 사마의였다. 모두 제갈량의 탁월함을 칭송할 때 사마의는 언제나 이류인생(二流人生)이었다.

그러나 유비(蜀), 조조(魏), 손권(吳) 모두 삼국통일을 완수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류인생 사마의의 후손이 삼국을 통일한다. 탁월함의 상징이었던 제갈량은 실패를 다룰 줄 몰랐고, 한 국가의 운명을 군기가 부러지는 사소한 징조에 걸었다. 그러나 사마의는 실패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숱한 모함과 수모, 이류인생의 설움 그리고 죽음의 고비에서도 잡초처럼 일어나는 법을 알았고, 하늘마저 자신을 돕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최후의 승리는 탁월함에 있지 않다. 최후의 승리는 참고 견뎌내는 사람에게 있다. 셰익스피어는 “아플 때 우는 것은 삼류이고, 아플 때 참는 것은 이류이며, 아픔을 즐기는 것이 일류 인생”이라고 했다. 아플 때 참는 것! 여기 누구보다 자신의 인생을 리셋 하고 싶은 이류인생 한 사람이 있다.

아일랜드계 호주인인 아버지와 필리핀 출신의 이주 노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호주의 골프 선수 제이슨 데이(27)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참혹했다. 12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를 계기로 싸움꾼으로 청소년기를 시작했다. 20대 초반에는 ‘양성발작성 두위현훈증(BPPV)’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이 질환으로 젊디젊은 그는 감각이 무디어져 몸이 보내는 위치 신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운동장애와 시야장애를 안고 살아야만 했다. 골프는 고사하고 일상의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2013년 11월에는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으로 친척 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데이의 날들은 시련과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미국 미시간 호수로 일몰(日沒)이 드리워졌다. 27살의 ‘양성발작성 두위현훈증’을 겪던 이 젊은이가 마지막 18번 홀에서 ‘챔피언 퍼트’를 하기 위해 섰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불과 15센티미터 앞에 우승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는 2개월 전 US오픈에서는 2라운드 경기 중 현기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의 나이 여섯 살 때,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아버지 앨빈은 3번 우드를 잘라 처음으로 골프를 가르쳐 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방황하는 그를 잡아 준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싸움판에서 뒹구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의 유산인 집을 팔아 전문적인 골프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스포츠 전문학교에 아들을 보냈다.

데이는 이후 새벽 5시에 일어나 연습을 했고, 식사도 거르며 심지어는 저녁에도 골프 연습을 했다. 책을 살 돈이 없어 친구에게 타이거 우즈의 골프 책을 빌려 공부했다. 그리고 우즈의 스코어를 적고 다니며 자신의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2008년 무명의 데이는 “우즈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호언했다.

그로부터 7년 후, 2015년 8월 17일, 미국 위스콘신 주 쾰러의 휘슬링 스트레이츠 골프장에서 벌어진 제 97회 PGA 챔피언십, 마지막 챔피언 퍼트를 위해 서 있는 그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데이는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2개로 5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20언더파를 친 데이는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더구나 4대 메이저대회를 통틀어 20언더파 우승은 데이가 처음이다. 종전 메이저대회 최다 언더파 우승은 타이거 우즈가 2000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세운 19언더파였다. 그는 마침내 우즈를 무너뜨렸다.

아픔을 즐기는 것! 리셋은 인생을 후회하며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초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데이는 잠시 방황했지만 어머니가 내민 손을 잡고 그의 날들을 다시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문이 하나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립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뒷골목을 전전했으면 오늘의 나는 없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희생하신 덕분입니다.”

“아플 때 우는 것은 삼류이고, 아플 때 참는 것은 이류이며, 아픔을 즐기는 것이 일류 인생”이다. 리셋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극하면 변하는 것이 천지의 이치다. 고난을 당해 잘 참기가 어렵다.

나는 참담한 이류인생으로 살다가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해 ‘리셋’을 감행했다. 참고 참고 또 참으면 영단(靈丹)이 모이고 마음에 심력(心力)이 쌓여 마침내 이류인생도 일류인생으로 올라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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