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울린 영결식장의 오바마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타면자건’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불가(佛家)에서는 탐(貪)·진(瞋)·치(癡)를 삼독(三毒)이라고 하여 수행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세 가지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가운데 화(禍)를 일컫는 ‘진’은 인간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인간관계를 해치는 첫 번째 해악이다.
‘타면자건(唾面自乾)’이라는 말이 있다.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것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즉 ‘처세를 잘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참기 힘든 수모도 인내로 견뎌야 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신당서>(新唐書) ‘누사덕전(婁師德傳)’에 나온다.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때의 신하 누사덕은 팔척장신에 큰 입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됨이 신중하고 도량이 컸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무례한 일을 당해도 겸손한 태도로 오히려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고, 얼굴에 불쾌한 빛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아우가 대주자사(代州刺史)로 임명되어 부임할 때 누사덕이 아우에게 참는 것을 이렇게 가르친다.
“우리 형제가 함께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 남의 시샘이 클 터인데 너는 어찌 처신할 셈이냐”고 물었다. “남이 제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화내지 않고 닦겠습니다.” 동생의 대답에 형이 나지막이 타일렀다.
“내가 염려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를 것이야.” 상대방이 화가 나서 침을 뱉었는데 그 자리에서 닦으면 더 크게 화를 낼 것이니 닦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당부였다.
누사덕의 지혜를 오늘날 가장 완벽하게 실천하는 지도자는 아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일지도 모른다. 최근 대국민 직접 소통에 나선 오바마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는 모욕적인 악플이 범람했다. 심지어 ‘검은 원숭이’ ‘원숭이 우리로 돌아가라’는 흑인 비하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자신을 겨냥한 저급한 비방을 지금까지 지우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이버의 침’이 SNS에서 그냥 마르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오바마의 놀라운 포용정치가 다시 빛을 발한 것이 아닌가? 그는 지난 달 26일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숨진 흑인 목사 장례식에 참석했다.
추모사를 읽던 오바마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더니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를 부르기 시작했다. 반주도 없었다. 영결식장을 가득 채운 6000여 참석자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일어나 찬송가를 함께 따라 불렀다.
어떤 흑인 여성은 오바마를 손짓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은 연설 도중 희생자 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이 신의 은총을 받았다”고 말했다.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의 박수소리가 아메리카 전역에 울려 퍼진 것이다.
포용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고통스러운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내의 ‘忍’은 심장(心)에 칼날(刃)이 박힌 모습을 본뜬 글자다. 그러니까 칼날로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바로 인내라는 말이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누구나 가슴에 칼날 하나쯤은 박혀 고통스럽게 산다.
고통을 참느냐 못 참느냐, 거기서 우리의 삶이 결판난다. 누사덕, 오바마 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인생사가 다 그렇다. “배신의 정치를 뽑아내겠다”고 분노를 표출하신 우리 대통령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운지 가슴이 아프다.
그럼 이런 분노와 수모를 대처하고 이겨내는 방법은 없을까?
첫째, ?숫자를 세는 것이다.
화가 치밀면 1부터 10까지 천천히 숫자를 세어본다. 차근차근 심호흡을 하면서 숫자를 세다 보면 마음이 느긋해지면서 화를 진정시킬 수 있게 된다.
둘째, 분노에 반응하는 방법을 바꾼다.
화가 나면 표출하는 사람이 있고 삼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두 방법 모두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좌선, 명상, 심호흡, 운동 등으로 분노를 대신 표출하는 것이 좋다.
셋째, 화를 진정시킨 후 분노를 표현한다.
한창 화가 난 상태에서는 이성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다. 싸움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쉬면서 화를 가라앉힌 후, 상황을 되짚어보는 것이 좋다.
넷째, 생각한 뒤 말한다.
분노가 생길 때는 바로 대화를 하지 말고 스스로 의견을 정리한 뒤에 한다. 대화는 어떤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다섯째,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불만을 표현할 때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불만의 이유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여섯째, 가능한 해결책을 찾는다.
이유 없는 분노는 없다. 분노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무작정 화만 내기보다는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일곱째,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당장에 너무 화가 나는데 스스로 조절이 되지 않는다면 자리를 피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한 발 물러서서 생각을 정리하고 화를 누그러뜨리는 시간을 가진 후에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
남의 터무니없는 공격을 받고 참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참을 인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타면자건’의 누사덕이나 오바마라고 어찌 노여움이 없었을까? 어쨌든 화가 치밀 때는 한 번 멈추는 것이다. 바를 정(正)자는 ‘一+止=正’으로 이뤄졌다. 한번 그치면 올바른 길을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