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쿠르’ 우승 조성진을 통해 본 한국 풍류의 맛과 멋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최근 만 21살의 앳된 청년 조성진 피아니스트 덕분에 무척이나 행복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로 알려진 쇼팽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소식이 전해졌고, 그의 경연실황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필자는 천상 전생에 수도인(修道人)이었던 모양이다. 진리를 추구하고 도(道)를 논하면 절로 신바람이 나는데 음악을 들으면 도통 이해를 잘 하지 못한다. 거기에다가 필자는 음치에다 박치, 몸치까지 겸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그런 필자가 우리 맑고 밝고 훈훈한 카페 ‘덕화만발’ ‘풍류 음악방’에 올려진 ‘조성진 콩쿠르 실황중계와 갈라쇼 실황동영상’을 보고 가슴에 진한 감동이 끓어올랐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쌓아 왔을까? 어렵고 기나긴 곡을 무아지경(無我之境), 즉 삼매(三昧)의 경지에서 연주를 하는 것을 보면 마치 도통한 선승(禪僧)을 대하는 듯했다.
‘프레데릭 쇼팽협회’는 10월 18∼20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국제쇼팽 피아노콩쿠르 결선의 최종 심사결과 조성진이 1위를 차지했다. 1927년 시작된 쇼팽 콩쿠르는 러시아 차이콥스키콩쿠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음악 콩쿠르로 꼽힌다.
이 콩쿠르는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5년에 한 번 열리며 16∼30세의 젊은 연주자들이 쇼팽의 곡만으로 실력을 겨룬다. 조성진씨는 10년 만에 결승에 오른 것은 물론 한국인 최초로 우승까지 차지했다.
지난주 ‘국제 쇼팽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씨의 실황연주 음반이 11월 6일 전 세계에서 동시 발매되었다. 이 음반을 사려고 새벽부터 ‘줄서기 진풍경’이 벌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음반을 구매하게 된 학생 최재혁씨는 “인터넷에서 사서 택배로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직접 와서 사는 것은 조금 다르고,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왔다”며 “세계 최초 구매자로서 음반 포장을 처음 뜯을 때 묘한 설렘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음반은 주요 온라인 음반 사이트에서 예약판매만으로도 유명가수들을 제치고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보통 유명한 클래식 앨범도 첫 제작은 2000~3000장에 그치는 데 이번 앨범은 5만장을 찍어낸 것도 이례적이다.
이번 앨범은 조성진이 지난달 콩쿠르 예선과 본선에서 연주한 14개 작품 가운데 조성진씨만의 해석을 잘 보여주는 ‘녹턴 op.48-1’ ‘소나타 op.35’ ‘폴로네이즈 op.53’ ‘24개의 프렐류드 op.28’ 등 4개 작품이 담겨 있다. 특히 조성진에게 ‘폴로네이즈 최고연주상’을 안긴 ‘폴로네이즈 op.53’은 조성진씨가 우승 후 열린 갈라 콘서트에서 앙코르곡으로 연주해 폴란드 대통령의 기립박수를 받은 작품이다.
음반 유통사인 유니버설뮤직 관계자는 “클래식 음반을 사기 위해 줄 서기를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이번 음반이 내년 초까지 7만장, 내년 상반기까지 10만장 정도 판매될 것으로 희망한다”고 밝혔다.
일찍이 “풍류(風流)로써 세상을 건지리라”는 말은 원불교 2대 종법사를 역임하신 정산(鼎山) 송규(宋奎) 종사님께서 천명하신 말씀이다. 여기에서 풍류가 무엇을 뜻하는 지 정확히는 모른다. 풍류는 보이지 않는 것은 바람처럼, 보이는 것은 물처럼,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미가 아닐까?
조성진씨 연주를 보노라면 마치 명상과 선의 경지에 몰입하는 삼매의 경지에서 노니는 기분이 든다. 잔잔하고도 맑은 물에 송사리 한 마리가 요리조리 헤엄치는 걸 떠올린다. 때로는 유유히 때로는 거센 물결을 헤치는 송사리의 움직임을 살피듯, 조성진씨의 풍류를 듣는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을 맑고 밝게 정화(淨化)시켜 본다.
바람 ‘풍(風)’자와 물 흐를 ‘유(流)’자가 합쳐져서 된 풍류라는 말은 단순한 바람과 물 흐름이 아니다. 그래서 풍류는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또는 ‘운치가 있는 일’ 그리고 ‘아취(雅趣, 아담한 정취 또는 취미)가 있는 것’ 또는 ‘속(俗)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으로 풀이한 학자도 있다.
풍류를 풍속(風俗)의 흐름으로 보아 문화와 같은 뜻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또 풍월(風月)과 같은 뜻으로 보아 음풍농월(吟風弄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에 대하여 시를 짓고 즐겁게 놂)하는 시가(詩歌)와 관련짓기도 한다. 또한 풍류를 자연과 인생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삼매경에 대한 미적 표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그 사람은 풍류가 없어”라든지 “풍류를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하면 저처럼 멋도 없고 음악도 모르고 여유도 없는 옹졸하고 감정이 메마른 틀에 박힌 꽁생원쯤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이와 같이 풍류란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 멋이 있는 것, 음악을 아는 것, 예술에 대한 조예, 여유, 자유분방함, 즐거운 것 등 많은 뜻을 내포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풍류라는 말이 주로 음악과 관련되어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줄풍류·대풍류·사관풍류·풍류방·풍류객 등이 그것이다. 줄풍류·대풍류는 악기편성을 뜻하고, 사관풍류는 악곡을 가리키며, 풍류방·풍류객은 음악 하는 사람이 모이는 곳, 음악하는 사람 등을 뜻한다.
그리고 풍류라는 말은 <삼국사기> 진흥왕조에 화랑제도의 설치에 관한 기사 가운데 나온다. 그 기사는 최치원(崔致遠)이 쓴 ‘난랑비서문(鸞?碑序文)’을 인용한 것이다.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즉, 신라 당시에 있었던 현묘지도(玄妙之道)가 곧 풍류인데 그것은 유(儒)·불(佛)·선(仙) 삼교(三敎)를 포함하였다는 것이다.
풍류라는 것이 만만치 않다. 이 정도의 뜻을 알면 분명히 세상을 풍류로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어지러운 세상은 반드시 도로써 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