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카페가 맺어준 아름다운 우정···’덕화만발’ 원불교 덕산 선생과 반취 이기윤 소설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요즘 필자는 1주일에 한번 씩 눈에 레이저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몹시 고통스럽다. 그러다가 오른 쪽 눈에 무슨 잘못이 있든지 눈이 충혈 되고 쓰라려 잠을 자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왔다. 다행히 엊그제부터 응급처치를 받고 지금은 많이 안정돼 가는 중이다.

그런데 치료를 받는 날 졸문 ‘덕화만발’ 댓글에 답글을 달다가 견딜 수 없어 중도에 하루 쉬었더니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주셔서 여간 송구스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 맑고 밝고 훈훈한 카페 덕화만발의 ‘소설가 半醉 이기윤 칼럼 방’의 반취 선생께서 필자 고통이 마음으로 전해졌던지 다음과 같은 편지와 함께 귀한 ‘눈 치료 안대’를 보내왔다. 하도 그 편지가 준엄한 꾸중이고 명문이라고 생각돼 소개한다.

덕산 선생님께!

생로병사(生老病死) 네 글자가 자꾸만 우리 회장님을 체념(諦念)하게 만드는 것 같네요. 언젠가는 그런 날이 와서 속절없이 부처님 자비에 기대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돌팔이 반취가 진단하기에는「아직은」아닙니다.

왜냐하면 회장님에게는,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이 아직 넘치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성(神聖)하고도 신선(新鮮)한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유대교 랍비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이 남긴 청춘이란 시가 있지요. 가장 유명한 대목이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입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세계의 지성이, 전 세계의 노인들이 가슴에 새기고 있는 어록(語錄)입니다. 팔순이건 스물이건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로움에 대한 호기심, 왕성한 미래의 탐구심이 있고, 인생이라는 게임에 대한 즐거움이 있는 법입니다.

회장님 가슴에는 아직 두려움을 물리칠 용기와,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이 넘치지 않으신가요? 생로병사라는 게 꼭 나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상을 잃으면 그때 사람은 비로소 늙는 것입니다. 근심, 두려움, 체념(자신감의 상실) 같은 것이 자라나 정신을 굴복시킬 때 영혼에 주름이 지기 시작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 희망, 생기, 용기, 힘의 메시지를 수신하고 있는 한 회장님은 젊은 것입니다. 회장님의 기개(氣槪)가 그렇게 낙관주의 파도를 잡고 있는 한, 회장님은 아흔 살이 되어도 청춘이요, 백 살이 되었다 해도 청춘의 이름으로 눈을 감으실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추스르고 여유를 즐기십시오. 쫓기는 일에 (조금씩이라도) 벗어나십시오. 회장님이 쓰시는 원고량이 덕화만발만 해도 200자 원고지로 하루 13매~15매입니다. 주 5회 잡으면 일주일에 약 70매입니다. 게다가 모든 글에 댓글을 다시죠. 그것이 합하면 10매 정도 됩니다. 한 달이면 350매 내외의 글입니다.

완성해서 올리는 글이 350매라면 그걸 완성하기 위해 썼다 지웠다 하는 글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청춘이라 하지만 이거야말로 팔순의 건강에는 적입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살아있는 한 이건 계속한다”는 건 의지나 정열이 아니라 오기입니다. 분량을 줄이고 글의 무게를 조금 가볍게 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여생을 덕화만발 벗들과 오래오래 즐기지 않으시렵니까?

2015년 11월 5일

반취 이기윤 올림

<추신> 그리고 안구 훈련대를 동봉합니다. 일본산입니다. 우습게 보여도 눈 건강을 회복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답니다. 이걸 쓰고 생활하고 컴퓨터를 다룰 정도 되면 눈도 청춘이 되는 겁니다. 시도해 보십시오.

너무나 감사하고 준엄한 충고가 너무 고맙다. 나도 인생은 언제나 밝고 힘차고 젊게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지론이다. 청춘이란 인간의 나이로 정해진 어느 기간이 아니라 정신적 자세와 생활의 활동 상태를 표현하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언제나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살아왔다.

이상(理想)과 희망을 추구하는 상상력, 긍정적 사고와 적극적인 자세, 그리고 불타는 정열, 또한 강인한 의지와 정의(正義)를 향한 투지(鬪志),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험심, 이러한 정신과 생활태도를 청춘이라 여겨 힘차게 달려 왔지요. 저의 나이가 70이든 80이든 만년청춘을 구가(謳歌)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육신의 생로병사를 막을 재간은 없는가 보다. 더군다나 전생의 업장(業障)이 너무 두터워 전 세계를 좁다고 뛰어다니던 이 몸이 훨훨 날 수 없는 것을 막을 길이 없는 것은 아마 인간의 한계인 것 같다. 다 달게 받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이를 거부하면 어쩌면 더 말 못할 고통이 찾아올는지 모른다, 그걸 우리는 감수불보(甘受不報)라하고 순리(順理)라고 한다.

사람이 세상에 나와 행할 바 도가 많다. 그걸 요약하면 생과 사의 도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생의 도를 알지 못하면 능히 생의 가치를 못할 것이요, 또한 죽을 때에 죽음의 도를 알지 못하면 능히 악도(惡道)를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아는 사람의 명은 진리께서 알아서 거두시는 것이다. 나를 걱정하는 반취선생의 깊은 우정을 가슴에 깊이 담는다. 그러나 눈이 안 보이는 그날까지 ‘덕화만발’을 쓰는 행복을 누리다 떠나가고 싶은 것이 나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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