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어느 고승의 일갈 “금강경이 영험 있다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공부(工夫)란 무엇이고 수행(修行)이란 무엇일까? 사전에 보면 공부란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힘”, 수행은 “계율을 지키거나 깨달음을 열기 위하여 특정한 종교적 행위를 행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거나 불도(佛道)에 힘씀”이라고 되어 있다.
그럼 어떠한 공부를 해야 하나?
첫째, 학습(學習)이다.
배우고 익히는 노력을 말한다. 학습이라는 말은 논어 첫머리에 나온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라고 했다. ‘배우고 항상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배운다는 것에 대해 주자(朱子)가 해석을 달기를 ‘학지위언(學之爲言)은 효야(效也)라’ 즉, ‘배운다는 것은 본받는 것이다’라 하였다.
습(習)에 대해서는 ‘조삭비왈(鳥數飛曰) 습(習)’이라 하였다. 새가 날개가 돋았을 때 처음부터 잘 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연습을 하고 또 해야 비로소 날 수 있게 된다. 마찬 가지로 학습이 깊거나 넓지 못하면 절대 인재(人才)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경전(經典)도 학습을 해야 알게 되고, 역사도 학습을 해야 알게 되고, 음식 하나를 만들어도 학습을 통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가 없다. 역대로 큰 스승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그 스승님들로부터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많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화엄경(華嚴經)이나 금강경(金剛經) 대종경(大宗經)이 아무리 대단해도 학습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사람이 큰스님께 찾아가 여쭙기를 “금강경이 영험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영험이 있습니까?” 그러자 큰스님께서는 “영험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자 왜 없는지를 다시 여쭙자 “금강경을 읽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외지도 않고 저 높은 서가에만 올려다 놓기만 하면 영험이 있겠는가?”라 하셨다.
둘째,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배우는 것은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학습과 지식은 함께 가는 것인데, 학습이 넓으면 지식이 넓어진다. 지식이라는 것은 결국 밖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학습을 했다고 해서 자기의 생각이 학습된 내용과 일치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자기가 더 발전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자기화 되는 공부 즉, 관조공부가 필요하다.
관조라는 것은 다른 데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관(觀)에 대해서 금강경에서는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라 응당 이와 같이 보아라’라고 했다. 모든 세상 사물이 지나간 것은 다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생각은 그림자와 같고 우리의 몸은 이슬과 같고 현재 사는 번개와 같다 하였다.
이렇게 인연법(因緣法)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 여래가 어디서 왔는가 하고 살펴보면 오는 곳이 없고, 어디로 가는 가 살펴보면 가는 곳이 없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는 ‘관’자는 과거, 현재, 미래와 동서남북, 천상천하의 시간공간을 전체 다 본다는 것이다.
셋째, 수련(修鍊)이다.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고 될 때까지 하는 것이 수련이다. 더러운 옷가지를 빨아내는 것이고 쇠붙이를 담금질하는 것이 수련이다. 배우고 익힌 것을 한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할 것이 너무 많고 배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음은 수행이다.
공부가 기본적으로 자기를 성숙시키는 노력이라면, 수행은 자기를 위하고 남도 위한 일이다. 그래서 보시하는 것, 공양하는 것, 부처님을 잘 모시는 것, 회향(回向)하는 것 모두가 수행이다. 그럼 그 수행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일상수행의 요법’으로 하는 것이다.
<일상수행의 요법>
1. 우리의 마음은 원래 요란함이 없으나 경계(境界)를 따라 있어진다. 그러니까 그 요란함을 없이 하는 것으로써 자성(自性)의 정(定)을 세우는 것이다.
2. 우리의 마음은 원래 어리석음이 없으나 경계를 따라 있어진다. 그러니까 그 어리석음을 없이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혜(慧)를 세우는 것이다.
3. 우리의 마음은 원래 그름이 없으나 경계를 따라 있다. 그러니까 그 그름을 없애는 것으로써 자성의 계(戒)를 세우는 것이다.
4. 신(信)과 분(忿)과 의(疑)와 성(誠)으로써 불신(不信)과 탐욕(貪慾)과 나태(懶怠)와 우치(愚癡)를 제거하는 것이다.
5.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는 것이다.
6. 타력생활을 자력생활로 돌리는 것이다.
7.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는 것이다.
8.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는 것이다.
9. 공익심(公益心)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는 것이다.
공부와 수행이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실행이다. 세우고 돌리고, 하고 하고 또 하고 될 때까지 하는 것이 공부와 수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