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멈추게 하려면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이념(理念)이 무엇이 길래 온 나라가 편을 갈라 마주 보고 달리는 전차처럼 죽기 살기를 할까? 송년모임이 잦은 요즈음, 심지어 종교에서도 보수와 진보로 갈리어 게거품을 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니다. 각종 모임에서 가급적 정치, 이념, 종교에 대한 편협한 얘기들은 삼가면 좋을 것 같다.
이념이란 한 시대나 사회 또는 계급에 독특하게 나타나는 관념을 말한다. 그리고 믿음, 주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 이념이다. 12월5일 노동자 농민들의 시위가 평화롭게 끝이나 그래도 한숨 돌렸다. 이념에 사로잡힌 인간이 얼마나 우습고 또 무서운지 모른다. 지금도 그 이념이라는 것 때문에 세상은 엄청난 사람이 죽어나고 있으며 수없는 사람들이 독재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
북한에서는 공산주의라는 이념 때문에 아직도 북한 동포들이 고통 받고 있고, 중동에서는 IS라는 집단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죽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념 때문에 진보와 보수가 갈라졌고, 이념 때문에 갈등하고 있다.
최근 벌어지는 노동자 농민들의 시위를 한 쪽에서는 물대포로 대응하고 한 쪽에는 경찰차를 부수며 난동을 부린다. 정말 웃기는 노릇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노조 시위를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 보듯 하는 것은 아무래도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국민들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모습이다.
자기편과 다른 생각, 다른 색깔을 지닌 사람들은 싹 쓸어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중국 외교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종종 거론되는 이른바 ‘구동존이(求同存異)’라는 것이 있다. 즉 ‘같음은 드러내고, 다름은 그대로 두는 방법’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자의든 타의든 뼛속까지 다른 사람과 함께해야 할 경우 제일의 금물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거나 설득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강요에 굴복하거나 설득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억지로 같아지려 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같아지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강요나 설득이 아닌 상대의 자발성에 기대하는 방법이 바로 구동존이다.
서로 같은 점을 찾아 함께 추구하기만 하면 다른 점들 때문에 만들어진 골이 저절로 메워질 수 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를 닮는다. 같은 점만을 생각하고 실천해 가다보면 다른 점들 사이의 골은 어느새 메워져 있을 것이다.
<중용>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 다음은 작은 부분부터 곡진히 하는 것이다. 곡진하면 정성스러워진다. 정성스러워지면 밖으로 나타나고, 밖으로 나타나면 겉에 드러나고, 겉에 드러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게 되고, 변하게 되면 감화되기에 이른다. 오직 천하에서 지극한 정성스러움만이 감화를 실현할 수 있다.”
중용은 거창한 목표를 세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부분들에서부터 정성스러워질 것을 권한다. 작은 일들부터 정성을 기울이며 걸어가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그 참마음이 저절로 밖으로 배어나와 궁극에는 함께 걷는 이들을 변화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구동존이의 이치도 이와 같다. 서로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같은 점부터 찾아 진심으로 함께 추구하다 보면 어느새 닮아있는 서로를 보게 된다. 싹 쓰러버리지 못하고 그래도 같이 살아야 할 사이라면 거의 유일한 방법이 이 구동존이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먼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지역으로, 이념으로, 계층으로, 세대 간으로 분열하고 있는지 오래다. 경상도, 전라도가 갈라져서 싸우고, 보수와 진보가 서로 미워하고, 노사의 격렬한 대립, 노장청 간에 선거 때가 되면 서로 말도 잘 안할 정도로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불어 살아야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고 소통하는 그런 세상이 바로 낙원이다. 그래서 일찍이 아름다운 우리들의 카페 덕화만발에서는 카페 첫머리에‘4대강령’을 제정해 올려놓았다.
1. 덕화만발은 사회의 공기(公器)이다.
2. 덕화만발은 가족 모두가 주인이다.
3. 덕화만발의 주인은 다음 네 가지의 강령을 지킨다.
하나, 우리는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세상을 지향한다.
하나, 우리는 편협한 종교, 이념, 정치를 배격하고 중도를 지향한다.
하나, 우리는 서로 돕고 이끄는 상생상화의 정신을 지향한다.
하나, 우리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활동한다.
치우침은 도(道)가 아니다. 중도(中道) 중용(中庸) 중화(中和)가 도다. 우리 사회에 보수와 진보는 결코 둘이 아니다. 국한(局限)을 크게 잡으면 좌도 우도 다 공(空)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