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쟁사상’ 대신 ‘헬조선’···한상균 떠나보낸 도법스님의 피 멍든 가슴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社)는 토지신(土])게 제사(示)를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회(會)는 회(膾)의 원래 자로 먹는 회를 이른다. 이 두 글자가 모임이란 뜻을 갖게 된 것은 국가 제사에는 사람이 모여들게 되어 있고, 횟감을 떠서 접시에 모아 놓고 모여 앉아 회를 먹는 데서 나온 것으로들 얘기한다. 그러니까 “살기 위해 모여들어 더불어 사는 것이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헬조선’은 지옥을 의미하는 영어의 ‘Hell’과 ‘조선’의 합성어다. 한국에서 살기가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힘들다는 의미와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이 선진국 같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현실에 대한 청년층의 불안과 절망, 분노가 드러난 이 단어는 인터넷에서 시작되어 최근에는 언론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헬조선의 등장 이면에는 청년층의 절망과 현실 직시가 있다. 열정페이, 무급인턴, 비정규직, 취업난 등 청년층의 현실이 우리나라를 ‘지옥’처럼 여겨지게 했다는 것이다.

헬조선이 단순한 신조어를 넘어 사회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청년층의 절망적 현실 인식이 계속될 경우, 혐오주의 등 사회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헬조선이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얽혀 있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해결의 필요성이 있다.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하나의 해결방법으로 ‘화쟁사상(和諍思想)’이 있다. 우리나라 불교의 저변에 깔린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다. 본래 불교 교단을 뜻하는 ‘상가(sangha, 僧伽)’는 화해, 화쟁의 의미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①본인이 있는 데서 잘못을 다스려라 ②쟁론이 있을 때 잘못을 기억하게 한 뒤 죄를 다스려라 ③정신착란으로 논쟁을 일으켰으면 정상으로 회복된 뒤에는 묵인하라 ④마땅히 본인의 자백에 의하여 죄를 다스려라 ⑤죄상을 추구하여 죄를 다스리되 반드시 다수결에 의하여 단죄하라 ⑥승단 내에서 파당싸움이 벌어져 잘잘못을 오랫동안 가리지 못할 때는 풀로 땅을 덮듯 불문에 붙여라 등이다.

이 교리의 ‘화쟁’은 우리나라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이다. ‘화쟁사상’은 신라의 원광(圓光)과 자장(慈藏)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제정한 원광은 <걸사표(乞師表)>를 지어 모든 것을 원융(圓融)의 바탕 아래 무쟁(無諍)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화쟁사상은 절대자유와 평화완덕(平和完德)을 이상으로 삼은 것으로, 석가모니 이후 우리나라 불교에서 꽃피우게 된 금자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근 한달 동안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 은신해 있다가 지난 10일 조계종 화쟁위원회 중재로 별 탈 없이 마무리된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조계사에 은신 중이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끝까지 대화로 설득했던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도법(道法) 스님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종교는 고통의 현장을 떠난다면 설 자리가 없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또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싸움의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면 불길을 가라앉히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했다.

도법 스님은 “부처는 살아있을 때 만민이 모두 평등하다고 했는데, 이는 당시 체제로 보면 매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발언이자 몸짓이었다”면서 “종교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고 절망스럽게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더불어 갈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도법 스님은 한국사회를 공평하고 실력 있는 심판 없이 선수들만 격렬히 뛰는 운동 경기장에 비유하면서 “화쟁위원회는 특정한 어느 편에 서서 문제를 다루지 않고, 선수를 만나게 하고 대화하게 해서 바람직한 합의를 도출해 보고자 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고 했다.

이렇게 도법스님은 다른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가진 불교계와 한 위원장이 만난 상황에 대해 “차분하고 충분하게 소통할 수 없었고 불만과 억울함, 서운함이 다 있다”고 소회를 소개한 뒤 “서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이 세상은 함께 살도록 돼 있다는 기본 기조를 지켰다”고 털어놨다.

도법 스님은 “만나서 대화하고 지혜와 마음을 모아내는 과정에서 한 위원장 개인이나 민노총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자진 출두라는 변화가 일어났다”고 평가한 뒤 “2차 민중총궐기대회 이후 평화의 기운을 손상하지 않도록 잘 마무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막바지에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종단과 민주노총, 경찰이 지혜롭게 인내력을 발휘하고 절도 있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잘 정리된 것 같다”며 공을 사회에 돌렸다. 도법 스님은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노동개혁이 이뤄지든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대로 노동개악이 중단되든 갈등과 대립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도법 스님은 “타인을 온전하고 고귀한 존재로 볼 수 있어야 비판도 투쟁도 공동체를 살리는 약이 된다”면서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자 동반자임을 인식하는 대화와 상생의 문화가 우리 사회 안에서 확산하길 기원한다”고 했다.

이 땅에 화쟁사상이 살아 있음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만약 이번의 사태가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면 어쩌면 이 땅에서 불교는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종교는 이 땅의 갈등을 해결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쳐야 존재의의가 있다. 모든 갈등 당사자들이 혼자 가려고 하지 마시라. 당신에게 또 다른 손, 우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함께하기’ ‘도와주기’ ‘같이 우승하기’를 가르쳐 준다. 이 더불어 사는 방법이 화쟁사상이다. 우리의 젊은이들도 ‘헬조선’을 외칠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체득하여 이 땅을 오히려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데 앞장서는 것이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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