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헬조선’ 대한민국의 자화상···혼용무도·금수저·갑질·열정페이·N포세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015년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가 선정됐다. 이 나라가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을 나타낸 것 같다. <교수신문>은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전국의 대학교수 8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절반이 넘는 524명(59.2%)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이르는 ‘혼용(昏庸)’과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논어>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무도(無道)’를 합친 표현이라고 한다.

즉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失政)으로 나라 전체의 예법과 도의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상태를 이른다. 역사가들은 ‘혼용무도’의 표본으로 중국 진(秦)나라의 두 번째 황제 호해(胡亥)를 들곤 한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지방에 순행을 나갔다가 갑자기 병사하게 되자 환관 조고(趙高)는 유서를 조작해 적장자가 아닌 호해를 후계자로 옹립한다.

그리고 뒤에서 국정을 농단(壟斷)했다. 호해는 환관 조고의 농간에 귀가 멀어 실정과 폭정을 거듭하다가 즉위 4년 만에 반란군의 겁박에 의해 자결하고 진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 혼용무도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과)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무능함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승환 교수는 또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고 했다.

혼용무도의 뒤를 잇는 올해의 사자성어들은 모두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2015년 한국사회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성어들이다. 이에 대해 야당에서는 21일 브리핑을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 혼용무도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나타내는 너무도 적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첫 해인 2013년의 사자성어가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였다. 그리고 2014년엔 진실을 숨기고 국정을 농락한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이를 떠올리면 어쩌면 2015년의 ‘혼용무도’는 그것들이 누적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또 ‘세월호 참사’부터 ‘메르스 사태’까지 국민을 참담하게 만든 국가의 무능함과 무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십상시’ 파문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국정혼란과 인사파동,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혁 시도’ 그리고 작금의 ‘경제비상사태’ 논란과 의회 겁박까지 모든 국정운영이 혼돈 그 자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혼란상과 이로 인한 민생파탄은 정치지도자들의 위험한 인식에서 시작되었음은 물론이다.

아울러 혼용무도의 현상으로 ‘금수저’ ‘갑질’ ‘헬조선’ ‘열정페이’ ‘N포세대’ 등 자조 섞인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이르렀다. ‘수저계급론’은 ?신조어로, 부모의? 재력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다. 부유한 재력가의 자식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하고, 금수저는 아니지만 물려받을 유산이 있는 중산층은 은수저, 평범하면 동수저,? 생계가 어려운 정도면 흙수저라고 한다.

‘갑질’이란, 갑을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입니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백화점 모녀사건, 서울대 수리과학부 어느 교수가 교수직위를 이용해 제자와 인턴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 등 이른바 ‘갑질’ 논란, 갑의 횡포가 끊이지 않고 신문지상을 채우고 있다.

청년층이 한국을 자조하며 일컫는 말인 ‘헬조선’은 지옥(Hell)과 조선(朝鮮)을 합성한 신조어다. 말 그대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란 뜻이다. 현실에 대한 청년층의 불안과 절망, 분노가 드러난 이 헬조선은 인터넷에서 시작되어 최근에는 언론에서도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열정페이’는 열정(熱情)과 페이(pay)가 결합한 신조어다. ‘좋아하는 일(열정)’에 대한 경험을 ‘돈(pay)’ 대신 주겠다는 뜻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 단어는 최근 의미가 확대되어 청년층의 저임금 노동 착취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열정페이’를 강조하는 기업이나 사업자는 근로자를 인턴이나 수습처럼 불안정한 형태로 고용하고 저임금이나 무임금으로 일하게 한다. 경력이나 학력에 비해 낮은 연봉을 주거나 원래 계약과 무관한 잡무를 과도하게 시키기도 한다.

열정페이는 이력서에 경력을 넣기 위해 참여하는 직업체험형 인턴십, 경력과 전문성이 중요한 직종에서의 수습·교육생 노동, 그리고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통한 현장실습 등에서 열정페이 논란이 일고 있다.

또 N포세대란 말도 있다. 주거·취업·결혼·출산 등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하는 20~30대 청년층을 일컫는 말이다. ‘88만원 세대’나 ‘민달팽이 세대’처럼 경제적·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불안정한 청년 세대의 상황을 보여주는 슬픈 신조어다.

N포세대는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층을 뜻하는 ‘삼포세대(三抛世代)’에서 유래했다. 삼포세대는 2010년 이후 청년실업 증가와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인해 등장한 20~30대 청년 세대다. 이 삼포에다가 취업과 내집 마련을 포기한 ‘오포세대(五抛世代)’, 인간관계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칠포세대(七抛世代)’ 등의 신조어도 나타났다.

N포세대 문제가 다음 세대에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진다. 한참 희망에 부풀어 마음껏 정열을 불살라야할 이 땅의 젊은이들이 왜 이런 슬픔을 당해야만 할까? 그것은 분명히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들의 잘못이다.

정치란 국민들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젊은이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슬픈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대부분 지도자의 ‘혼용무도’함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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