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석창우·에이드리언 데이비스를 기억하십니까?

“비가 내리면 그냥 비를 맞겠습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사람이 살아가면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의외의 질병이 찾아와 절망에 빠질 때가 있다. 아마 사명감이나 신앙의 힘이 아니었으면 내가 바로 그 꼴이었을 것이다. 요즘 점점 더 걷기가 어려워진다. 눈도 좀처럼 회복되지를 않는다. 그래도 어금니를 물고 이 고통을 이겨내려고 두 손에 등산용 스틱을 부여잡고 죽기 살기로 걷는다. 왜냐하면 내게는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을 지키고 발전시킬 소명(召命)이 있으니.

<아시아엔> 독자께서는 왜 사는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찌 하시는지? 어둠에 갇힌 내 안을 아무리 들여다 보았자 길이 보일 리 없다. 차라리 나보다 더 갑갑한 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어떨까? 저보다 더한 악전고투(惡戰苦鬪)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곳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요즘 저는 이런 분들에게서 큰 감동을 얻는다.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이 분들을 떠올리기로 했다. 그분들은 삶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깊은 울림으로 인생을 가르쳐 주는 스승들이다.

첫번째, 하반신이 마비된 체조 선수가 있었다. 그는 18살 생일을 이틀 앞둔 1983년 7월4일, 체조 연습을 하다 잘못 떨어져 가슴 아래가 마비되는 중증 장애인이 됐다. 올림픽에 걸었던 그의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병원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석달을 누워 지내며 어둠 속을 헤매기를 1년, 마침내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인다. 그러자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이 뻥 뚫렸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진리를 향한 기도가 우러나온다. 그는 이제 다른 꿈을 향해 일어섰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재활의학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거기에서 자기가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그는 사고가 난지 꼭 10년 만에 다트머스의대에 합격했다.

그 후, 다트머스대와 하버드 의대 인턴을 수석 졸업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라는 존스 흡킨스대 병원의 재활의학 수석전문의가 되었다. 바로 이 대학의 ‘슈퍼맨 의사’로 통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승복 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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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존스홉킨스대 병원 재활의학 수석전문의가 진료하는 모습(왼쪽), 체조선수 시절의 모습.

그는 말한다. “수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내 희망을 꺾지는 못했다. 나에게 육신의 장애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할 수 없다’는 마음의 장애가 더 무섭다. 나는 사고로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얻었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나는 의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사고 전과 지금의 삶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지금을 선택할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이후 나는 장애를 축복이라고 여긴다.”

두번째, 두 팔을 절단한 전기 기사이야기다. 그는 29살이던 1984년 어느 가을날, 전기 안전점검을 하다 고압 전기에 감전됐다. 갑자기 두 팔이 전선에 척 들어붙으며 몸 안으로 불덩이가 들어왔다. 나중에 눈을 떠 보니 양 손이 없어졌다. 까맣게 타버린 두 팔은 이미 잘려 나갔다. 이제 그는 걷는 것 말고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옷도 다른 사람이 입혀 주어야 하고, 밥도 먹여 줘야 한다. 세수도, 용변도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절망의 끝에서 찾은 길이 그림이었다. 그는 평생 학교미술시간 외에는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4살 된 둘째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보챘다. 그는 의수(義手)에 볼펜을 끼고 동화책에 나온 새를 그려 줬다. 그런데 아들이 그 그림을 너무 좋아했다.

사고를 당하고 4년 동안 아무 희망 없이 살던 그는 여기서 자기 길을 봤다. 미술학원을 찾았으나 받아 주는 곳이 없어 서예학원을 찾아갔다. 학원에서 어느 정도 배우고는 또 다른 스승을 찾아갔다. ‘수묵(水墨) 크로키’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그는 한국 제1호 의수 화가 석창우 님이다.

누군가 그에게 묻는다. “하늘에서 건강한 두 팔을 다시 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가 답했다. “안 받아요. 내가 양팔을 잃은 것이 운명이라면 의수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숙명입니다.”

세번째, 얼마 전 세계적인 아이디어 행사(TED)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렸다. 그런데 흰 드레스에 의족(義足)을 한 여인이 무대에 올라와 파트너와 함께 춤을 췄다. 무대의 주인공은 에이드리언 헤이즐럿 데이비스. 프로댄서였던 그녀는 재작년 4월 보스턴 마라톤을 구경하다 폭탄테러로 왼쪽 다리를 잃었다. 함께 구경했던 남편도 중상을 입었다.

고통과 절망 끝에 그녀가 선택한 것은 무대였다. 200여 일 처절한 고통을 참아낸 연습과 재활 그리고 다시 선 무대. 더 이상 춤 출수 없을 것 같았던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춤 룸바를 선보였다. 무대의 조명은 꺼지고 춤을 마친 그녀는 울먹였다.

“내가 다시 춤출 수 있는 건 참 좋지만 더 기쁜 것은 꿈을 이루려는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어 뿌듯합니다.”

꿈이 있으면 많은 걸 잃어도 이룰 것이 많다. 고통과 절망도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순간이다.

이 세 분의 인생반전은 닮은꼴이다. 그들은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중증장애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더 큰 삶을 찾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장애는 절망을 넘어 운명이 되고, 축복이 된 것이다. 장애는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불시에 찾아든 장애를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그들이 선택한 것이다. 삶의 의미란 이런 받아들임과 선택 속에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사지가 마비되고 잘려 나가는 장애도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거늘, 어째서 그토록 사소하고 작은 고통에 굴하십니까?”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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