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여아 학대사건’ 피의자에게 주고 싶은 말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사람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을까? 짐승은 자기 것을 나눌 줄 모른다고 한다. 어떻게 부모가 되어서 자기 자식을 그렇게 학대할 수 있는지? 얼마 전 온 나라를 분노케 했던 인천 11살 여자아이 학대 사건의 피의자들이 경찰 조사를 마치고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검찰로 송치됐다.

아이의 아버지와 동거녀, 그리고 동거녀의 친구는 누구를 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끌려갔다. 이들이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만큼 중요한 게, 남겨진 아이를 체계적으로 치료하고 또 치유하는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부천에 살던 부녀가 잠시 여관 등을 전전하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결국 인천으로 이사해 동거녀와 동거녀 친구와 정착한 이 무렵부터 아이에게 본격적인 학대가 벌어졌다고 한다. 가족의 수입은 동거녀가 밤일로 벌어오는 돈이 전부였고, 아빠와 동거녀의 친구는 밥 먹는 시간을 빼곤 인터넷 게임에만 매달렸다.

새벽에 퇴근한 동거녀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었다. 처음에는 파리채로 때리다가 나중엔 쇠로 된 옷걸이 같은 것으로도 때렸다. 밥을 굶기는 건 애교에 불과했고, 동거녀의 친구는 틈만 나면 아이의 손과 발을 노끈으로 꽁꽁 묶어 세탁실에 가뒀다. 아이에게 집이란 포근한 안식처가 아닌 무간지옥과도 같은 곳이었을 거다.

평균 키보다 25cm나 덜 자란 게 당연했다. 소아 의료 전문가들은 이렇게 장기간 학대를 당한 아동의 경우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여도 신체 여러 장기에 이상이 생겼거나 골밀도가 감소하고 호르몬의 불균형도 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탈출 후 지난 일주일 만에 4kg이 늘어난 것도 사실은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한다.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넓은 종이 위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너무나도 조그맣게 그린 이 아이가 상처를 치유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몸과 영혼이 온통 멍든 그 소녀에게 세모(歲暮)를 당하여 선물과 성금이 답지했다. 지난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성금이 무려 5천만원이 넘게 들어왔다. 이제는 그렇게 먹고 싶었던 피자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맡아 기르겠다는 사람도 나왔다. 나눔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의 조그마한 나눔의 결과가 죽지못해 살아왔던 한 아이의 생명을 건지고 비로소 얼굴에 미소를 띠울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강사가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풍선을 분 뒤 거기에 각각 자기 이름을 쓰라고 했다. 그리고는 모든 풍선을 다른 한 방에 집어넣고 잠시 뒤, 자기 이름이 쓰인 풍선을 5분 안에 찾으라고 주문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풍선을 찾느라 서로 부딪히고 밀리며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5분이 흘렀지만 단 한명도 자신의 풍선을 찾지 못했다. 강사는 이번에는 아무 풍선이나 집어 거기 적힌 이름을 보고 그 사람에게 주도록 했다. 그러자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이 자기 풍선을 찾게 됐다.

강사가 말한다. “우리가 실시한 풍선 찾기는 우리네 삶과 똑같습니다. 모두 필사적으로 행복을 찾아다니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지요. 우리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함께 있습니다. 그들에게 풍선을 찾아주듯 여러분도 행복을 나누어 주십시오. 어느 순간 여러분은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나눔의 삶이 바로 자기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마음이 있는 한 나눌 것은 있다. 땀 흘려 번 정재(淨財)가 없다면 이 튼튼한 몸으로 나누면 된다. 만약 저처럼 몸도 성치 않으면 마음으로라도 상대가 잘 되기를 하늘에 축수(祝手)를 드리는 것도 아주 좋은 나눔이다.

나눔으로써 남의 이름이 적힌 풍선을 나누어 주는 것처럼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지는 법이다. 그걸 불가(佛家)에서는 보시(布施)라고 한다. 보시에는 흔히 세 가지 형태의 보시가 있다.

첫째, 법시(法施)다. 법시는 정신적인 베풂이다. 진리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 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미혹(迷惑)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둘째, 재시(財施)다. 스스로 탐욕 심을 없애 필요한 자에게 재물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셋째, 무외시(無畏施)다. 무외시는 중생을 불안과 공포로부터 구해주는 것이다.

불보살은 어리석게 남의 일만 해주는 것 같으나 결국 자기의 이익을 불러온다. 바로 나누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불보살이다. 정신 육신 물질 세 방면으로 혜시(惠施)하는 사람이 장차 복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그 베푸는 공덕도 베풀었다는 상(相)이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덕도 음조(陰助)하는 덕이 더 크고, 죄(罪)도 음해(陰害)하는 죄가 더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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