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YS 전매특허 ‘대도무문’ 진짜 뜻은?

 

 1998년 김영삼 대통령이 신년휘호로 제심합력(齊心合力)을 쓰고 있는 모습.

1998년 김영삼 대통령이 신년휘호로 제심합력(齊心合力)을 쓰고 있는 모습<사진=국가기록원/뉴시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말이 있다. 본래 송나라 선승 혜개(慧開, 1183~1260)스님의 수행의 이치를 담은 화두를 모은 책 <무문관>(無門關)에서 비롯된 말이다.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대도에는 문이 없으나 갈래 길이 천이로다./ 이 빗장을 뚫고 나가면 하늘과 땅을 홀로 걸으리라)

이 말이 한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의 휘호로 더 유명한 적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쓴 뜻은 “큰 길엔 아무런 막힘이 없다”라는 의미, 즉 자신이 대통령이 될 운을 타고 났다는 의미로 쓴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혜개가 설한 뜻과는 사뭇 동떨어져 있다. 혜개는 “도를 닦는 것은 쉽게 보이지만 옳은 길을 찾기는 어렵다”는 뜻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대도무문의 그 대도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도 광대무변(廣大無邊)하기 때문에 우주법계(宇宙法界) 어느 곳에라도 부처님 가르침이 충만해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불심(佛心)이나 불성(佛性)이나 이러한 것은 어디는 있고, 어디는 없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다.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지옥에도 있으며, 부처님의 그 불심, 불성은 없는 곳이 없는 뜻이다.

인간만 불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옥에도 있고, 극락에도 있으며 아귀(餓鬼)와 심지어 개에게도 불성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것도 불성이 없는 곳이 없다. 따라서 부처님 법은 어디에나 다 있는 것이다. 그리고 팔만사천법문은 모두 무문가입(無門可入)이라 문마다 다 통하는 법이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수행하는 데 하나의 방법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내 것이 옳다 네 것은 그르다 국집(局執)하면 바로 그것이 법집(法執)이다. 집착하는 그 자체가 벌써 우리 마음을 우매하게 만든다.

옛날에 당나라 대표적인 선승인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선사에게 어느 제자가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었다. 선사는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마음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또 다른 제자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마음이 없다면 부처도 없다”고 했다.

파도는 쉼 없이 바다에게 말 하건만 바다는 말이 없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댄들 덧없는 것이다. 햇빛을 소리 없이 세상을 금빛으로 물들이지만, 세상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광활한 하늘, 텅 빈 바다, 모래,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건만, 인간은 나 홀로 번뇌에 잠겨 바닷가에 서성이며 그 무엇인가를 어리석게 찾아 헤매고 있다.

원래 무(無)인 것을, 원래 공(空)인 것을! 그러나 바람과 나무는 항상 겨루고 있다. 세상은 너무나 적막한데, 누군가는 눈을 가지고 있어 혼란스럽다. 우리 인간에게 눈이 없었던들 광활한 공간과 푸른 바다, 하얀 모래밭과 구름 한 점 없는 청정한 하늘이 끝없이 펼쳐졌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 항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거늘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죽을 때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인생이란 허공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다. 허공에 흘러 다니는 구름은 원래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 오고 감이 바로 이와 같다. 하지만 항상 분명한 것이 하나 있으니,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순수하고 청정한 것 바로 그것이다. 순수하고 청정한 그 하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을 고집하거나 만들어 내거나 또 그것에 연연한다면 마음의 거울은 이미 더러워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청정심을 갖는다면 마음은 텅 비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비출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붉은 색을 비추면 붉게 보일 것이요, 하얀 것을 비추면 하얗게 보일 것이다. 이것을 방해받지 않는 완전한 자유라고 한다.

그러므로 ‘나(我)’라는 생각을 버리고 마음에 어떤 것도 만들지 말고, 고집하지도 말며, 연연하지도 말고 ‘오직 모를 뿐!’ 바로 이 길이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 걸음인 것이다. 그것이 대도무문이다.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을 우리는 보살행(菩薩行)이라고 한다.

그 중생을 미혹에서 깨달음의 길로 교화하기 위한 네 가지 실천덕목이 있다. ‘사섭법(四攝法)’이다.

첫째가 보시(布施)다. 남이 필요로 하거든 원하는 것을 그저 주는 것을 말한다. 공덕 중의 제일이 보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나 재능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둘째는 애어(愛語)다. 이것은 남에게 용기와 자신감, 그리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말을 하여 부드럽게 이끌어 주는 것을 말한다. 공대해서 뺨 맞는 법 없다.

셋째는 이행(利行)이다. 다른 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번뇌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걸음걸음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다.

넷째는 동사(同事)다. 다른 이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행동하면서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을 바른 길로 제도(制度)하기 위해 함께 일하며, 고통도 함께 나누는 대승보살행을 말한다.

대도에는 문이 따로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이 임자다. 우리의 마음을 허공 같이 비우고, 희로애락에 집착하지 않으며, 이 ‘사섭법’을 실천하면 대도는 무문이라 우리 앞에 대도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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