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씨가 회고록 써야 하는 이유
3당합당, 5·16 등 사실대로 남겨야
[아시아엔=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양의 서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전기(biography)다. 유명 정치인뿐 아니라 할리우드 스타나 체육인, 방송연예인 등 유명세를 조금이라도 탄 인물 이야기는 독자들 흥미를 끌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살았구나, 부럽다!라는 일종의 대리 만족일 것이다. 최근 김종필 전 총리가 “자서전을 남기지 않겠다”고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기사를 보고 좀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측천황후쯤 된다고 생각하나? 무자비(無字碑)라도 세워줄까?’
무자비는 업적이 너무 많아 작은 비석에는 모두 적어 놓을 수 없으니 그냥 비워두라거나 자신의 공과는 후대에 판단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먼저 떠오르는 게 당 고종의 황후이자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 측천황후의 무자비다. 필자는 태산의 정상에서 측천황후의 무자비를 보았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그건 한 무제(武帝)의 것이고, 측천황후 무자비는 당의 수도였던 장안(오늘날 서안)에 남편 고종의 능 옆 자신의 능에 있다고 한다. 한 무제의 무자비는 자신의 업적을 모두 적어 놓을 수 없어 그냥 비워두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 측천무후가 무자비를 남긴 뜻은 무엇일까? 오늘날 여성지위가 향상되고 국가경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변한 탓에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제법 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행적은 말 그대로 악마적이었다. 당 왕조의 자손을 거의 몰살하고 9번째 아들인 남편 고종을 황제로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고종의 어머니 장손(長孫)황후의 동생 장손 무기(長孫無忌) 등 장손씨 일가를 비롯하여 정적들을 자손까지 몰살한 인물이다. 장손황후는 중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황후다.
그러한 행적을 남긴 측천황후가 자기의 일생을 공덕이랍시고 가득 채운 무자비를 남겼으면 후세에 온전히 전해졌을까? 글자 없는 비석이나 남겼으니 무시당한 채 아직 서 있는 것이지 허세가 담긴 비석이라면 그가 죽고 이씨가 황제로 등극한 후 곧 망가졌을 것이다.
김종필씨의 공을 기리는 송덕비는 고향인 충남 부여군에 있다. 자신이 세운 게 아니고 지역민들이 세웠을 것이다. 송덕비는 세우고 자서전(전기를 포함해서)은 남기지 않겠다는 말인가?
이런 표면적인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다. 자서전을 남긴다면 무슨 내용이 실릴까 하는 게 핵심일 거다. 김종필씨 자서전 내용을 상상해 본다. 우선 5.16의 당위성을 내세우고, 다음은 3선개헌과 유신헌법 당시 자신의 행적에 대해 말해야 되는데 무슨 말을 할까? 그 다음, 유신시대 그의 역할에 대해서는? 민주화 이후 우리는 흔히 ‘3김 시대’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양김 시대’이고 김종필씨는 민주화를 만들어 낸 양김에 무임승차한 게 아닌가? 그가 이 시기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두 사람 사이에서 균형자 노릇을 했다고 할 건가, 아니면 노태우-김영삼-김종필 3당 합당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뒤 이어 DJP 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자랑할 건가? 아니면 이들에게서 내각제 공약을 배신당했다고 할 건가?
이 모든 것에 대해 입 다물고, 자서전 쓰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창피하다고 느끼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남기는 것이 후세에 대한 마지막 봉사가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다. 원죄를 타고 났거나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온 자서전이나 전기는 주인공을 완벽한 위인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양 전기에 비해 별로 인기가 없다. 서양에서는 비록 위인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도 불완전한 한 인간이란 관점에서 그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김종필씨도 숙명적으로 2인자로서 살아가야만 했던 그의 인생행로를 담담히 술회한다면 후세 역사가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남기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받을 것이다.
역사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은 전기, 특히 자서전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한다. ‘자서전’, ‘전기’, ‘oral history’ 등은 모두 양면성, 아니 함정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객관적 자료들과 두번 세번 대조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자서전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큰 낭패를 본다.
3.1운동 33인 중 한 분인 L씨와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나온 영문논문을 보면 마치 3.1운동 주역같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33인 중 막내로 잔심부름이나 했을 뿐이다. 해방 후에 나온 다른 분들 자서전을 3.1운동 당시 재판기록과 대조해 보아도 비슷하다. 그의 자서전에서 주장하는 ‘3대원칙’이니 ‘비폭력성’ 등을 재판에서 말했다면 분명 본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인데 이같은 진술을 재판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의 역사서는 자기미화에 바쁜 자서전 등 기록물을 비판적 검토 없이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물론 자서전이나 전기가 이같은 함정에도 불구하고 참조용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 개인의 경험이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