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무능 대통령보단 ‘내각제’가 낫다
내각책임제를 생각해볼 필요조건은 성숙되었지만 내각제로 바꿀 수 있을지, 내각제의 단점은 무엇이며 이를 보완할 조건은 무엇인가 등은 내각제의 충분조건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감정이다. 김대중은 허약한 노태우 정부를 흔들어 단식으로 지방자치제를 관철시켰다. 이로써 호남의 맹주로서 어떠한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일단 확보하였다. 영남을 기반으로 한 김영삼도 마찬가지다. 김종필도 충청권의 맹주가 되었다. 박근혜가 비효율의 상징인 세종시를 고집한 ‘원칙과 신뢰’도 충청권의 표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전멸하고 민주당이 영남에서 전멸하는 것은 지역감정 외 어떠한 정치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감정은 참으로 亡兆이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常數다.
인구로 보아 영남권은 호남권과 충청권을 합해야 대등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지역감정이 한국정치를 좌우하는 한,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은 백년까지 누릴 수 있다. 대통령제에서는 DJP연합과 같은 방법으로 호남권도 집권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내각제하에서 이러한 방법이 통할지는 의문스럽다. 유럽의 연정같이 경상도가 강원도와 연합을 이루면 언제고 호남 충청 연합을 누를 수 있다. 어차피 수도권은 전국 지역세의 축도이고 반영이다. 지역감정에 의존하고 불을 붙였던 정치인들은 참 ‘나쁜 사람들’이다. 이를 완화시켜 보려고 노력한 몇몇 정치인들은 ‘바보 노무현’ 이외에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대권을 쥔 것도 호남의 맹주 김대중의 간택이 결정적이었다. 김대중은 햇볕정책의 상징 임동원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6.25참전군인 김종필과는 DJP연합을 더 이상은 끌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향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정서이다. 그러나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88서울올림픽과 월드컵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달성한 한국사회의 자부심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여기에는 지역감정도, 세대차이도 없었다. 망국적 지역감정에 불을 붙인 것은 이때 이후다. ‘우리가 남이가’의 김영삼 정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욱 불타오른 호남민심에 기댄 김대중 정부에 와서 지역감정은 활짝 開花했다.
디지털 문명의 도래로 우리 사회에서 2030과 5060의 차이는 남북한의 차이보다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통일은 우리세대가 아니라 이들 젊은 세대에 기대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감정의 해소도 이들 디지털 세대에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세계적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에게나 조언을 구하고픈 생각이 든다.???
내각제가 성공하기 위한 충분요건은 지역감정이 아니라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같이 정책을 두고 다투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여야의 편차는 55대45 정도인 것이 좋다. 한나라당 정부에 이르러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은 전면적으로 부정되었다. 수정 보완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으나, 정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대통령들이 개혁, 혁신, 개조한다고 계속 판을 뒤집어 득을 보는 것은 북한, 일본, 중국 밖에 없다.
현실에서 개헌을 추진하기란 지난(至難)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치열한 토론과 계산을 통해 해볼만하다는 共鳴이 있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하고 끌고 나가는 국민적 열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내각제로 가기 위한 충분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