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섬진강에 광역 ‘슬로우시티’ 만들자
의대를 목포에 둘 것인가, 순천에 둘 것인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순천에 의대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공약이고 목포에 의대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민주당 박지원의 오랜 약속이다. 목포냐 순천이냐를 두고 선택할 것이 아니라 ‘목포에도, 순천에도 모두 의대를 두면 될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의대 증설을 한사코 반대하는 의사들 로비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마침 정의화 국회의장이 의사 출신이니 총대를 메고 의사출신 의원들을 설득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떨까.
영국에서 의사는 national health service에 속하는 일종의 공무원이다.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한국만큼 신속하지는 않지만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 만족도는 대단히 높다. 한국에 의사가 넘쳐난다고 하는 것은 의사들 생각이고 아직도 국민 대부분이 선진국 수준의 의료혜택을 받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30년 전에는 검사가 2백명 안팎이었다. 지금은 그 10배가 넘는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판검사는 격무에 시달리는데도 그들은 판검사의 증원을 바라지 않는다. 지금도 변호사가 넘친다고 아우성인데 법학대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변호사들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가 걱정이란다. 그러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법률가가 아직도 더 많이 필요하다. 전관예우를 누리는 대법관 출신이 연봉 몇 억, 몇 십억을 받는 세월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 없다. 한 해 수천명씩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는데 소년등과 하면 부귀영화를 누리던 시절에 집착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요사이 운위되는 모병제가 되면 과연 군의관이 되려는 의사가 있을까? 의대생들이 군의관을 지원하는 것은 군에는 반드시 가야되니 군의관으로 가는 것이지 모병제가 되어 박봉의 중·대위 봉급을 받으면서 군의관이 되려는 의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법무관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전문직업인인 의사와 법조인이 모병제 하에서 군을 찾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모병제는 이것 하나만 보아도 얼마나 덜 떨어진 생각인가를 알 수 있다.
의대를 동부 전남, 서부 전남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차라리 섬진강을 중심으로 순천, 여수, 광양, 고흥, 하동, 남해 등 6개 시군이 합하여 광역시를 만드는 ‘참신한’ 방법도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순천을 중심으로 한 동부 전남과 목포를 중심으로 한 서부 전남은 동편제(東便制)와 서편제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더욱이 전라남도 일부와 경상남도 일부를 합하여 하나의 광역시를 만드는 것은 국민가수 조영남의 ‘화개장터’만큼이나 발랄(潑剌)한 사고다. 과거에 이 지역은 섬진강이 경계가 되어 말씨부터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이제는 한 생활권이다.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편승하여 영화를 누리던 것은 여야가 똑같다. 이 망조를 깨려는 이정현, 김부겸 등의 시도가 실(實)을 거두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의 구조적 변화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정치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의회주의를 마비시키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을 폐기시키는 것이 우선이나, 섬진광역시를 창성(創成)하는 것도 추진해볼 만한 착상이다.
전라선으로 찾아가는 섬진광역시는 작가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의 고장, 빼어난 슬로우 시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