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통수권을 능멸한 짓이다
장관이 이번 사건을 신문보도를 보고 알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하지만 오랫 동안 국방부에 몸담았던 선배로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윤 일병 사고는 그 자체로 엄청난 사건이지만 육군에서 장관에게 제때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에 못지않게 큰 문제다. 사단에서는 이런 일이 어떻게 오래 덮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가? 총장이 제 때에 보고를 못 받았다고? 어떻게 사단장이 감히 하늘같은 총장을 기망(欺罔)하겠다고 마음을 먹는가?
사단장 밑에 있는 인사, 헌병, 감찰은 그렇다하자. 지휘계통과는 독립된 계통을 유지하고 있는 기무부대도 이를 몰랐는가? 기무사령관까지는 보고가 되었는데 기무사령관이 장관에 보고를 하지 않았는가? 어느 가능성을 놓고 보더라도 현재 우리 군대의 기강은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것은 통수권을 능멸(凌蔑)한 짓이다. 통수권자의 특단의 조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건이 일어난 경과를 보면 우선 사단 의무대장이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곧 중·대위 군의관들도 모두 오불관언(吾不關焉)이었다. 아무리 직업군인이 아니고 곧 전역할 군의관들이라고 하지만 이들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의사가 된 전문직업인의 대표인 의사(Medical Doctor)가 아닌가?
군 검찰관이 아무리 새내기라 하더라도 이런 사고에 대한 수사지휘가 이 정도란 말인가? 하기야 장차 20년 후 이들 검찰관들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검사장도 이미 죽은 유병언을 두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하리만큼 엉터리 수사지휘를 하여 온 국민의 실소를 자아내게 한 것이 바로 며칠 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결국 한국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법률가가 된 사람들의 전문성은 위험하리만큼 저조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 법무대학원 졸업생은 어떨는지? 초임 검찰관보다 능숙해야 할 고참 헌병수사관도 마찬가지였는가? 이들은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은 말할 것도 없고, 최소한의 직업의식이 결여된 장교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보다도 이런 행패에 분노하는 최소한의 정의감도 없는 청년들이었다는 말인가?
모두들 이것은 ‘흔한 사고로 넘어갔기 때문에’ 야기된 사태다. 아무리 대한민국 군대가 대군(大軍)이고, 국민을 대표한다고 하는 국회의원이 세월호 참사를 하루에도 수백 건씩 일어나는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윤 일병의 부모에게는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식이라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보았는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온 세계가 전율하고 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미국이 굴복할 수 는 없다”고 자국민을 아프리카에서부터 공수하여 치료하는 미국을 보며 “국가란 이래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형을 본다. 윤 일병이 린치를 당하며 죽음보다도 더욱 두려워한 것은 이를 어디에도, 아무에게도 호소할 데가 없다고 체념하였을 때의 절벽과 같은 공포다. 그 상황이 너무도 부끄럽다. 이것이 국가고 국군인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공과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국가의 본분과 도리’라고 할 수 있는 국군포로 구출에 아무런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분노를 누를 수 없었던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국가와 국군은, 개인과 병사에게는 참으로 크고 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