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김정은 유고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북한 김정은 국방 제1위원장이 심상치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면 서두를 것이 없다. 그저 가만히 두고 보면 되는 것이다. 90년대에 빈사상태에 이른 북한의 변화를 선도하기 위하여, 많은 정치학자나 언론인들이 대북 개입(engage)을 위한 적극적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하였을 때 이상우 교수 등 전략가들은 개입하거나, 간여하지 말고 긍휼의 무관심(benevolent negligence)을 유지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최근 평양에서 근무한 영국외교관이 “북한은 가만히 놓아두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정은 상태가 어떤지는 아직 모른다. 최고인민회의 불참으로 정상적으로 집무할 수 없음은 만천하에 들어났다. 그는 온갖 만성적 질환을 가진 30대의 노인이다. 김정은이 도저히 회의에 못나간다고 했을 때 이를 최종적으로 결심하고 당에 전달하는 것은 아마 동생 김여정이 했을 것이고, 조선중앙방송에 “불편하신 몸…” 이라고 하던 방송은 김기남 정도가 결정했을 것이다. 이들 밖에 이 문제에 간여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김영남, 황병서도 이런 문제에는 제3자다. 주석단의 텅빈 김정은 자리를 쳐다보며 북한 당정군의 요인들은 온갖 계산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천하의 장성택도 하루아침에 날라갔다. 더 몸을 사릴 뿐 아무도 책임질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무작위의 작위, 이것이 현 북한체제의 실상이다.
북한에 남북관계든 대미관계든 돌파구는 없다. 당이든, 군이든, 정이든 구명도생(苟命徒生), 봉건왕조 시대 수준의 적나라한 권력암투가 만개할 것이다. 장성택도, 김경희도 이미 사라졌다. 김정은 주변에 있는 것은 리설주, 김여정 정도가 고작이다. 중국은 유일한 백두혈통 김정남을 세우려 할 것이다. 북한 급변사태때 중국이 북한에 군을 진주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설익은 제국주의적 생각이다. 중국은 이보다는 훨씬 지혜롭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북한을 손에 넣으려 할 것이다. 북한경제가 질식하지 않고 이만큼이라도 돌아가고 있는 것은 장마당을 통해 중국에서 유입된 돈 덕분이다. 중국은 이 추세를 확대시켜 북한의 광산, 부동산 등을 매입하여 북한을 살리려고 나서고 있다. 남한의 제주도를 아예 사려고 덤비는 것과 같은 책략이다.
북한에 황장엽 같은 이론가나 장성택 같은 전략가가 있다면 이러한 중국을 어떻게든 이용하면서 북한체제를 지속시켜 보려 노력하겠지만, 김영남, 김기남, 강석주도 이제는 맥이 빠졌다. 이들은 권력을 보위하거나, 호위 또는 창출할 위인들은 아니다. 최룡해, 황병서, 장정남 등도 오극렬, 조명록, 김일철에 비해서는 턱도 없다. 리설주와 김여정이 이들을 끌어 모아 나갈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김정일은 장성택에게 유고(遺誥)를 남겼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후주 유선(後主 劉禪)이 불민하면 직접 뒤를 이으라고 했다. 청의 강희제는 14왕자 옹정을 후계자로 지정하였다. 청의 극성기는 성조, 세종, 고종으로 이어지는 후계자 선정의 성공에 의해 가능했다. 민주국가에서는 제도적으로 권력이 안정되나 왕조국가에서는 전조(前朝)에 의한 후계자의 선정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김정은이 유고를 맡을 장성택을 쳐버린 것은 유선이 제갈공명을 쳐버린 것과 같다. 북한의 실상을 관찰하고 해결하는 데는 이런 역사적 지혜가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