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최초 ‘문민 국방장관’ 으로 불린 한민구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래로 국방부 장관에 민간 출신이 와야 된다는 것은 오래된 예상이고 기대였으나 문민 국방부장관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왜? 적임자가 없어서? 적임자는 무슨 요건을 갖춘 사람인데? ‘군인과 국가’의 저자로 군에 대한 문민통제 이론을 정립한 새뮤얼 헌팅턴은 “민주국가에서 국방부장관은 정치가, 전략가, 경영인이어야 한다”면서 “이들을 찾는 것이 쉽지 않으나, 그럴수록 국방부장관은 국가사회가 배출한 최고급의 인물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방부장관은 통수권자의 대리인이며, 전군의 리더다. 리더의 갖추어야 할 조건은, 첫째 통찰력(특히 역사적 통찰력), 둘째 포용력, 셋째 용기라고 본다. 사태를 한눈에 파악하는 통찰력은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손자병법에 장수의 오덕 지(智) 신(信) 인(仁) 용(勇) 엄(嚴)이라고 하면서 지를 가장 먼저 꼽은 이유다. 김대중 대통령이 간고(艱苦)한 가운데서 대통령이 되었던 것은 상인(商人)의 지혜다. 둘째가 용기다. 김영삼 대통령이 머리는 빌릴 수 있으나 몸은 빌릴 수 없다고 하였지만, 그가 영수(領袖)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담대함을 기반으로 한 용기다. 셋째는 포용력이다. 특히 포용력은 어느 사회, 조직에서나 리더가 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리더로서 이러한 필수요건을 갖추었음을 전제로 문민 국방부장관의 요건에 대해 숙고해보자. 우선 문민의 정의는 무엇인가? 군에 다녀오지 않은, 또는 직업군인으로 굳어지지 않은 사람을 문민이라고 하면서 이를 기준으로 국방부장관을 구하는 조건으로 삼는다면 한참 부족하다. 군을 다루는 가장 높은 직책이 국방부장관인데 군, 군인, 군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군을 제대로 지휘 관리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文民은 개화(civilized)된 사람이라는 것을 우선으로 치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는 군인은 개화가 덜 된 사람으로 보는 인상이 있다. 그러나 천만에! 사람 나름이다. 국방부장관은 무엇보다도 개화된 장군을 찾아야 한다.
지난 19일 열린 병영문화혁신위원회의에서 한민구 장관이 ‘문민장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30여년 이상 여러 분의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경험에서 보아 한민구 장관은 여기에 가장 근접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장관은 이런 회의에 참석하면서 제시된 각종의견에 대해 “그런 것은 이미 생각해왔다”고 하며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을 탓하며 군에 모든 짐을 떠맡기면서 예산의 뒷받침을 못하는 정부를 탓한다. 더욱이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 정보화된 세상이라 유난히 시끄럽다고 시세(時勢)를 탓한다. 심지어 외부 참석자들을 설득, 교육하려고까지 한다. 명석, 유능하다는 장관일수록 그 경향이 심하다.
그러나 한민구 장관은 참석자들의 말을 우선 잘 듣는다. 그러면서도 적절하게 시간을 통제하면서 참석자 대부분이 수용할 수 있는 결론을 유도한다. 군의 회의는 대부분 일방적인 보고와 지시로 끝난다. 군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지휘관 참모활동 순서에 따라 진행되며 장군들은 여기에 능숙하여 장군들 사이에 변증법적으로 오가는 토론은 필요 없는 것이 통상이다.
한민구 장관은 이점에서 특이하게 포용과 소통의 미학이 몸에 배었다. 그는 타고난 성품과 지속적인 내공쌓기로 문민 국방부장관이 될 기질과 소양이 충분하다. 군을 잘 알면서, 다른 한편으로 문민의 소양과 기질을 지닌 문민 국방부장관이 실현되고 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