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여성 군통수권자 ‘대리’의 책임 무겁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지 35년이 지났다. 김재규가 민주의사라는 말이 있으나 총을 맞고 “나는 괜찮아”라는 박정희의 외마디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체념 이외에 달리 해석할 길 없다. 박정희는 자신이 만든 유신체제가 이렇게라도 풀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유신체제는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다는 것을 그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문제도 그렇고 국방개혁에 있어 잘못된 것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관학교 출신의 장군, 제독은 누가 무어라 해도 정상교육을 받았다. 노무현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이런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서는 참모들의 각별한 지혜가 필요하다. 전작권 전환이든, 국방개혁이든 민간 대통령은 사정을 잘 모를 수 있다. 덜컥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한 카터는 타산지석이다. 미군은 싱글러브 참모장을 내세워 반대하는 방법까지 동원하여 정책의 변경을 가져왔다.

우리 국방부장관도 어떤 방법으로도 노무현 대통령께 충정을 다해 건의했어야 했다. 참모는 윗사람에 대해 충정을 다해 건의해야 한다. 한 번 아니면 두 번, 두 번 아니면 세 번이라도 건의해야 한다. 세 번 건의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결심권자, 지휘관에 따라야 한다. 아니면 사임해야 한다. 이것이 참모의 기본자세요 도리다. 참모가 지휘관을 잘 만나는 것도 큰 복이다. 박정희는 부하들에게 누구보다 냉엄하였지만, 새로운 착안에 대해서는 과감히 채택하여 발전시키는 지휘관으로서는 탁월하였다.

2004년 이종석은 안보장관회의에서 남북 선전수단의 철거를 결정하는 안보회의를 주도하였다. 국방부 군비통제관은 장관께 여기에 대한 반대의견을 건의했다. 장관은 “김 장군만이 남북관계의 전문가냐”고 진노했다. 군비통제관은 “내가 아니어도 결국 누군가는 장관에 지시에 따라 이 일을 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육사출신인 나는 하고 싶지 않다”고 결심했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10월 말 예정되어 있는 예편을 앞당기는 것까지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 것이라는 후배들의 간곡한 만류를 좆아 이 결심을 철회하고 2004년 11월30일부로 군을 떠났다. 최근 애기봉 등탑 철거를 두고 말이 많은데 대북선전수단의 철거문제를 둘러싼 곡절을 알고 있는 후배들이니 이를 충분히 검토하였을 것으로 믿는다.

대통령은 통수권자다. 군인이 충심을 다하여 통수권자의 의도를 좇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방부 장관은 특히 대통령을 보좌하는데 성심을 다해야 한다. 문민 대통령은 대부분의 군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도 모르기 쉽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고 엘리트라고 해서 외부에서 데려온 차관도 “국방부 문민화의 길은 아직도 멀었구나”를 재확인하는데 그치고 있지 않은가? 국방부 장관이 통수권자 대리(deputy commander-in-chief)라는 것이 사실상(de facto)의 통수권자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통령이 통수권자로서 필요한 지혜를 나누어 드리면서도 그 권위에는 누가 가지 않도록 조신(操身)하며, 국방이 어긋나가지 않도록 하는 지혜는 참으로 어렵다.

지혜로운 국방부장관을 두는 것은 통수권자의 큰 복이다. 유례가 없는 독신의 여성 통수권자, 그 대리로서 국방부장관의 책임은 더욱 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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