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북핵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으로 해결하자

리비아의 카다피는 20세기 후반 세계를 시끄럽게 만든 망나니 중의 하나였다. 카다피는 다양한 테러지원으로 서방세계를 괴롭혔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겨냥해 핵을 개발하는 공작도 진행하고 있었다. 1986년 카다피는 자폭테러로 영국 민간항공기를 폭파시켰다. 대처 수상은 응징을 다짐했고, 영국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미공군기는 사막의 천막에 있던 카다피를 조준, 폭격하였다. 카다피는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았지만 입양된 딸은 폭사했다. 그 후 카다피는 핵개발을 포기했으며 테러지원도 멈출 것을 약속했다. 그제서야 미국은 카다피에 대한 제재를 멈추었다. 대우가 리비아에서 대수로 공사를 하는 등 리비아가 세계에 합류하게 된 것은 그 이후다. 결국 카다피는 2011년,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를 휩쓴 재스민혁명 때 생을 마감하였다.

핵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의 P-5만이 핵 국가로 공인되어 왔다. 중국이 핵을 갖자 중국과 영토문제로 대결하고 있는 인도도 핵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인도가 핵을 갖자 앙숙 파키스탄도 핵을 개발하였다. 이들은 대국이며 자체의 기술과 자원으로 핵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미국도 이들의 핵 보유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인종차별로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남아프리카도 핵개발을 추진하였으나, 만델라 이후 남아프리카가 문명세계에 복귀하자 핵을 스스로 포기하였다. 이스라엘은 남아프리카에서 핵실험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핵을 개발 보유하게 되었는데, 미국은 암묵리에 이를 수용하였다. 북한은 이들에 이어 아홉 번째로 핵을 개발한 나라이다. 그러나 북한이 수차례 핵실험을 하여도 미국이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북한의 핵 보유를 수용할 수 없다는 확고한 표시이다.

더구나 세계의 다양한 테러조직에 북한 핵물질과 기술이 흘러 들어가는 것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치명적이다. 북한은 우선 더 이상의 핵 작동을 중지하고, 핵 확산을 중지하며, 소련연방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가 핵을 폐기하는 순서와 방법 등으로 핵을 포기하여야 한다. 독일이 핵을 갖지 않고서도 유럽을 이끄는 것을 보라. 북한에게 핵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북의 3인방이 남북관계의 대통로를 열자고 하였지만 핵문제의 해결 없이 대통로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관건이다. 이를 결단하는 것이 북한이 회생하는 첫걸음이다.

냉전 시기 우크라이나에는 소련 핵전력의 3분의 1이 배치되어 있었다. 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의 핵은 1994년 미국, 러시아, 영국의 관리 하에 러시아로 이관, 해체되었다. 이를 규정한 것이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이다. 북한 핵도 이러한 방식으로 관리, 이양, 해체될 수 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터키에 함락됐다. 이는 세계 역사상 큰 전변이었다. 이래로 수백년에 걸쳐 오스만 터키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1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에 가담한 오스만 터키는 패전 후에 해체되었으나, 케말 파샤에 의해 종교와 세속이 분리된 근대국가로서 부활했다. 이슬람의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국가를 만들겠다는 IS를 토벌하기 위해 터키가 참전하고 있다. 터키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지상군 전력을 가지고 있고 오스만 터키 이래 아랍인들에게 터키는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실재(實在)이다. IS에 대한 지상전 확대를 부정한 오바마로서는 터키에 대해서는 각별한 고마움을 가질 것이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다. 적과 동맹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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