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개헌하려면 파주 헤이리부터 연구하라

개헌론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개헌이 정부구조에 관한 것이라면 백년하청이다.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또는 이원집정부제든 각각의 역사와 유래가 있고, 성공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실패한 예도 있다. 이보다는 정치개혁은 국회를 개혁하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회의 문제는 정당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당권을 쥔 사람이 공천권을 쥐고 사실상 모든 것을 좌우한다. 의안에 대해 입장을 정하는 것이 당론인데 공천권을 쥔 자를 거슬리는 의원은 거의 없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고 한다. 전체로서의 국회가 헌법기관이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는 말이기는 하나, 국회의원의 위상과 책임이 그만큼 높다는 것은 표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당권을 쥔 사람과 개개의 의원은 사실상 오야붕(親分)-고붕(子分)관계다. 이승만 시대 자유당과 민주당은 이렇게 심하지는 안 했으나 그 이후는 박정희는 물론, 3김도 대동소이했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라고 하지만 우리의 민주화는 굳게 뿌리박지는 못했다. 개혁은 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야 한다.

1971년 10월2일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결의안이 제출되었다. 공화당 총재 박정희는 부결을 명했지만 김성곤 길재호 김진만 백남억 등이 반기를 들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른바 항명파동이다. 격노한 박정희는 김형욱의 중정을 시켜 그들을 가혹하게 린치하였다. 골프장에서 짐짝처럼 짚차에 처박혀 남산에 끌려온 그들은 무참한 고문을 받았다. 카이제르 수염으로 유명한 김성곤은 수염이 뽑혔다. 말을 듣지 않는 부하의 손을 칼로 자르는 조폭과 다름없었다. 국회의원의 체면이고, 인권이고, 아예 없었다. 집권당은 물론 야당도 공포에 새파랗게 질렸다. 10월유신의 전조였다. 아니 유신 전에 헌정과 법치는 이미 파괴되고 능욕된 것이다.

야당의 공천권과 당론이 독재적인 것도 별 차이가 없다. 일부 강경파가 당론을 주도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의원은 표로써 자유의사를 표명할 수 없으며, 나아가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수결을 무력화시켜 국정이 한 발자국도 못나가게 하는 횡포는 말할 수 없이 천박한 의회독재다. 개헌이 어떻게 되었든 정치의 주체인 정당이 이렇게 비민주적으로 조직·운영되어서는 민주정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공천권을 국민과 당원에게 돌려주고, 토의는 하되 자유의사로 표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공천권은 영국과 미국에서와 같이 각각의 유권자(constituency)에 맡겨야 한다. 후보자를 중앙당에서 지명하는 것은 선출(election)이 아니라 임명(appointment)이다.

파주의 예술인 마을 헤이리가 성공적으로 조성되고 운영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드문 일이다. 헤이리는 일종의 조합민주주의다. 규약에 동의한 사람만이 입주할 수 있고, 건물의 위치와 모양도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는 마치 스위스의 구(區)가 운영되는 것과 유사하다. 스위스에서는 마음대로 집을 짓지 못한다. 건물의 층고와 색깔도 평의회(council)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스위스의 정경이 한 폭의 그림같이 완벽한 이유다. 세계적 프랜차이즈를 가지고 있는 맥도날드도 건물 생김과 색깔은 스위스 각개 도시의 규정과 요구에 따라야 한다.

지방자치는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다. 정당의 민주주의도 이러한 방법과 순서를 밟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에 대한 천착 없는 개헌논의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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