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노(老)가 ‘최고경칭’이외다

소설가 한승원은 평론가 김치수를 영결하는 자리에서 “나이 여든이 되면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무당이 된다”고 했다. 하기야 공자도 “六十而 耳順하고 七十而 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했다. 모두 인간으로서 더 이상 오를 길 없는 경지에 달한, 젊은이들 표현으로는 도사가 다 된 경지를 표현한 걸 이른다.

설훈 의원의 ‘노인폄하 발언’이 소동이다. 그의 소명을 들어보면 발언에 크게 악의가 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년이 60세인 것을 기준 삼아 “나이를 먹으면 판단력이 흐려지니 79세의 쟈니 윤은 쉬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는 일반론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81세에 수상을 물러난 처칠이 90이 되었을 때 어느 젊은이가 “내년에도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고 덕담을 하자 “아니 자네는 아직 젊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는 기막힌 유머를 발휘했다고 한다. 설훈 의원은 교육문화위원장으로서 회의를 이끌어야 하는데 그가 ‘개인 느낌’으로 이런 문제에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81세에 대통령을 퇴임한 김대중을 가까이 모신 그로서는 더욱 마땅치 않다.

설훈 의원의 발언이 우연이나 개인의 느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대체로 1920년대에 태어나서 일제와 건국, 6.25를 겪은 분들이다. 이들은 다시, 1890년대생 분들에게 배웠는데 그들은 조선이 무너지는 것과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불꽃같이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였다. 이 모든 것이 책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겪고 참여한 체험이었다. 이들 세대는 진보진영이 제기하는 친일파 주장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직접 겪은 일로서 동조하기 어려운 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광복군 출신으로 김구의 비서를 지냈고 광복회 회장을 지낸 92세의 김우전 선생이 ‘친일파’ 이광수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이광수의 학병 권유 연설을 직접 들은 그는 이광수의 친일여부와는 별개로, 이광수의 연설에는 “학병 지원은 일제 치하의 조선 민족이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고민이 담겨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일본이 망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할 엄혹한 시절 춘원 이광수나 인촌 김성수의 행적은 이 고민을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 후 학병 출신은 일본군 중국군, 만군, 광복군 출신과 함께 건군의 주역이 되었다. 춘천전투와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 김종오, 용문산 전투의 장도영도 학병 출신이었다. 민주화투쟁의 장준하, 김준엽 등도 학병으로 일본군에 들어갔다가 중국에서 탈주하여 광복군에 합류하였다.

지혜는 경험의 소산이다. 지식의 축적과 지혜를 재는 잣대는 다르다. 관광사업에 전문성이 별로 없는 쟈니 윤이 관광공사 상임감사로 적합치 않다는 비판은 모르겠으나, 79세 나이가 문제라는 지적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 괜히 어르신들의 비위만 상하게 하는 발언일 뿐이다. 당권을 쥐고 공천권을 행사하는 세력은 만년 야당도 좋다고 할지 모르나 건전한 야당은 건강한 여당에 불가결하다는 점에서 현재 수준의 야당은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이다.

중국에서는 노(老)가 최고의 경칭이다. 등로(鄧老)는 등소평에 대한 친근과 존경의 염(念)이 넘치는 칭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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