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한반도 통일 ‘타산지석’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합쳐 U.K(United Kingdom)이 된 것은 1707년의 일이다. 그런데도 스코틀랜드인은 런던을 저 멀리 다른 동네로 본다. 스코틀랜드인은 앵글로색슨족 이전 브리튼의 주인이었던 켈트족이다. 잉글랜드의 북부에 하드리아누스의 방벽이 있는데,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는 여기까지”로 경계를 정한 것이다. 당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켈트족의 저항이 너무 심해 “이만!” 하고 전진을 멈춘 것이다. 켈트족은 아일랜드에도 건너갔는데 아일랜드가 잉글랜드에 병합된 것은 12세기이고 스코틀랜드가 영국과 합친 것은 18세기인데도, 켈트족은 앵글로색슨족과 다르다는 인식이 아직도 강하다.

스코틀랜드는 독자의 문화를 자랑한다. 스코틀랜드의 수부(首府) 에딘버러는 북유럽의 아테네라고 불리우며 스위스의 루체른,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와 더불어 유럽에서도 압권이다. 잉글랜드에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대학이 생겨나던 시기에 스코틀랜드에서도 에버딘대학이 만들어졌다. 에딘버러은행과 글라스고우은행은 모두 발권은행인데 이 화폐는 런던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 영국정부에서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파운드화를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뿐 아니다. 냉전시대 스코틀랜드는 노르웨이와 더불어 소련의 레닌그라드를 핵무기로 겨누고 있던 전략요충지였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려면 이 문제도 조정돼야 한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말은 해볼 수는 있겠지만 현실화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영국에서 4년을 산 제3자의 생각이다.

투표결과는 55대45로 부결되었다. 통상 정치에 간여하지 않는 여왕이 이번 사태에 대하여 견해를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정체(正體)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라가 갈라질 수도 있는 (devolution)의 문제를 이처럼 질서 있게 접근하는 영국은 과연 민주주의의 모국답다. 유럽에서 바스크, 카탈로니아 등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으나 하나의 유럽(EU)의 틀 안에서 해결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불침의 항공모함’ 제주도에 전략기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정부에 반대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가 혹시 스코틀랜드 흉내를 낼지도 모르겠다. 제주도의 부동산에 탐내고 몰려드는 중국인들도 조심해야 한다. 정방폭포를 가리키며 일찍부터 연고가 있었다고 우겨댈 지도 모른다.

우리도 머지않아 북한과의 통합이 닥쳐오는데, 이를 현명하게 처리하는 데에도 이번 스코틀랜드의 예를 깊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저만큼 떨어져 있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갈등과 분열을 처리하는 절차와 방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과 교훈을 준다. 김국헌/예비역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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