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강장 밑에 약졸 없다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 ‘가치관의 혼돈’이라는 칼럼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는 회색이다”라고 단정하였다. 사회의 어른으로서 희망을 주는 것도 쉽지 않고 더구나 낙담케 하는 진단을 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이런 단언적인 진단을 내린 충정에 대해 안타깝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라나는 세대에 희생·양보·인내·배려·관용·타협 등 인간다운 삶의 본질 요소들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에 진정한 선진화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거리에서, 직장에서, 조직에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았음직한 젊은 층을 찾기 힘든 사회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절충되고, 서로 믿고 기다려주는 배려와 관용이 작동되는 정치가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지금 우리의 미래는 회색이다”라고 냉엄하게 결론 내리고 있다.

언론인의 기능은 비난이 아니라 비판이며, 무책임한 비판이 아니라 책임성 있는 대안의 제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김 고문이 “지금 우리의 미래는 회색이다”라는 단언으로 끝을 맺고 있는 것은 원인과 해법을 각자 처절하게 침잠하도록 하는 충격적 수사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우선 확실한 것은 “강장 밑에 약졸 없다”는 철칙(鐵則)이다. 이류(二流) 지도자들은 별 수 없이 이류사회를 만든다. 그러나 일류 지도자들은 기필코 일류사회를 만든다. 박정희, 박태준, 이병철, 정주영 등은 일류였다.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도 그에 못지않았다. 지금 우리 주위에 일류가 보이는가? 성철 스님, 김수환 추기경, 한경직 목사가 보이는가? 유병언은 다름 아닌 바로 사회의 단면이고 민낯이다.

우리 역사의 어느 국면에 겉으로는 잘 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심정적으로 이처럼 어두운 시절이 있었던가? 아마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룬 정조의 뒤를 이은 순조 시절이 이랬을 것 같다. 외국에도 이런 역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 2차대전 후 안 되는 것이 없던 미국의 경우 카터 시절이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소련에 밀리고 국가적 프로젝트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자원이 무궁무진하였을 뿐 아니라 지도력 있는 인재도 뛰어났다. 레이건이 나와 미국의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소련을 해체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완벽한 승리를 거둘 때의 빛나는 기억이 새롭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과정에서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일류가 아직도 있다. 박찬종, 김경재, 이영작 등 텔레비전에 나와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분들은 이미 현실에서는 은퇴한 분들이다. 이들에게 무슨 현실적 욕심이 있겠는가? 다만 후배들에게 고언하는 것일 따름일 것이다. 이들을 청종(聽從)하면 그뿐이다.

우리의 뒤를 이을 후계세대가 자리를 잡지 못하면 오늘의 번영도 흔들리게 된다. 미래가 회색이 되면 과거의 피땀도, 현재의 번영도 없어지게 된다. 오늘의 군의 문제는 병영문화 혁신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개심이 필요한 과제다. 감리교를 methodist라고 한다. 엄격하고 바른 규율인 methodical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산업화된 영국을 근본적으로 개심시키는 정화운동이 일어나서 대영제국을 정신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밝은 미래가 있게 하기 위해서는 상하 공히 철저한 改心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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