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국방부장관’이라는 자리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럼스펠드는 포드 행정부에서 39세에 최연소 국방부장관이 되었다. 2001년 부시 행정부에서 69세에 다시 국방부장관을 맡았는데 그는 체니 부통령과 더불어 부시 행정부에서 네오콘의 아이콘이 되었다. 북한에 대한 근거 없는 희망을 버리고 단호한 대처를 요구한 점에서, 북한에 대한 화해를 주장한 김대중 정부는 매우 껄끄러운 존재였다. 수도 한가운데 있는 용산기지를 돌려주라는 결심을 내린 것이 럼스펠드이고, 노무현 대통령의 전작권 전환요구를 받아들인 것도 럼스펠드였다. 이들 모두 보통 장군들은 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럼스펠드는 주한미군사령부에서도 모시기 힘든 상사였다. 한미연합군사령관 러포트 장군이 한국정부가 요구한 DMZ 통과를 위한 절차를 협의하기 위해 워싱톤에 출장 가서 장관 면담 요청을 했다. 럼스펠드는 시종 면담을 미루다가 러포트가 귀임하기 위해 워싱톤의 공항으로 향하는 직전에 불러들여, “현지 사령관이 알아서 하라”고 쏘아붙였다. (이는 DMZ에 대한 관할권(jurisdiction)과 관리권(administration)을 둘러싸고 협상하던 필자가 유엔사 부참모장 솔리건 장군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미군은 2차대전 이후부터 육해공 3군이 함께 싸우는 합동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합동참모본부의 기능과 역할을 획기적으로 강화한 것이 1986년의 골드워터 니콜스 법안이다. 그러나 실천은 더뎠다. 럼스펠드는 탁월한 지성적 리더십과 장관의 권위로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이라크전쟁에서 럼스펠드는 군사혁신의 성과로 이루어진 초현대식 장비와 네트워크 중심전 등의 작전술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세키 육군참모총장과 프랭크스 중부군사령관은 재래식 전투에 소요되는 보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럼스펠드는 이들이 요구한 적정 규모의 재래식 전력을 거부하였다. 전 세계에 중계되는 이라크전에서 미군이 시가전에서 고전하는 어이없는 광경이 실황 중계되었다. 럼스펠드의 군사혁신은 분명 탁월한 착안이었지만 현지에서 실제 작전을 수행하는 지휘관들의 경험과 가치는 또 다른 차원에서 중요하였다. 프랭크스 장군은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되었다.

국방부장관이 합참의장, 각군 총장, 군사령관이 할 일까지 하려해서는 안 된다. 럼스펠드가 이처럼 군 수뇌부 건의를 수용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라크전 당시 군 최고지휘부는 럼스펠드가 최초 장관이었을 때 대부분 영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독선은 이해할 만했다. 누구처럼 “내가 해봐서 다 알아” 였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정부로부터 게이츠 국방부장관을 이어 받아 계속 기용하였다. 오바마는 게이츠 장관이 물러날 때 최고의 공복(public servant)라고 칭송하였다. 역대 미 국방장관 가운데 맥나마라, 와인버거, 럼스펠드가 손꼽힐 만하지만 게이츠와 같은 칭송을 받은 인물은 드물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주국가에서 국방부 장관이 갖추어야 할 인품, 능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미국에서는 참모총장, 합참의장 출신이 국방부장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에게는 군 출신이 장관이 되는 경우가 대종이다. 이 경우에 장군의 전문성과 장관의 역할, 기능이 선순환적으로 종합되어야 한다. 럼스펠드는 최선의 국방부장관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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