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 극복 위한 맥나마라 장관의 위기관리 11가지 황금률···”상대의 입장에 서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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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_McNamara

[아시아엔 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미셀 미 국무성 동아태담당차관보가 김정은에 대해 “아마도 핵 공격을 수행할 향상된 능력을 갖출 수 있겠지만, 그러고 나면 바로 죽는다”고 경고했다. 북한 핵에 대한 선제타격이 공공연히 논의되고 있는 지금 맥나마라의 회고가 눈길을 끈다.

그는 소련과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1962년 쿠바 핵미사일 위기 당시의 위기관리를 생생히 증언한다. 그는 2차대전에 참전하여 육군항공대 참모장교로 1945년 3월 10일 B-29 300대를 동원한 도쿄 대공습을 계획했었다. 일본 국민의 사상자는 20만에 달했고 목조건물이 대부분인 도쿄는 50평방 마일이 전소됐다. 이러한 그도 핵전쟁의 참화는 이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 번의 실수로 해당 국가는 절멸한다.

1962년 케네디와 맥나마라는 전쟁 없이 쿠바에서 소련의 핵미사일을 제거했다. 맥나마라는 후에 카스트로에게서 당시 쿠바에는 162개의 핵탄두가 있었다는 회고를 들었다.

맥나마라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터득한 위기관리의 황금률을 제시한다. 첫째, 상대의 입장이 된다. 둘째, 이성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셋째, 자신보다 가치 있는 게 있다. 넷째, 효율을 극대화한다. 다섯째, 전쟁에선 균형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섯째, 자료가 우선이다. 일곱째, 우리의 눈과 믿음도 틀릴 수가 있다. 여덟째, 늘 자신의 사고를 점검한다. 아홉째, 선을 위해 악을 행할 때가 있다. 열 번째, 단정적인 말은 안 한다. 열 한번째,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맥나마라의 충고는 모든 정치가와 전략가가 사고와 행동에 있어 심득(心得)해야 할 교훈이다.

맥나마라는 7년 동안 국방부장관으로 있으면서 군에 대한 문민통제(civilian control)를 실질적으로 가능케 한 PPBS-기획·계획·예산 관리제도를 정착시켰다. 그가 국방장관 시절 본격적인 월남전이 시작되었으며 결국 미국이 패배하는 것도 목도했다. 그는 “케네디 같으면 50만의 군인은 안 보냈을 것입니다”라는 말로 월남전의 수렁에 빠져든 것을 아쉬워 한다.

월남전의 진흙탕에서 빠져나온 후 미군은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을 통하여 새로운 군대로 바뀌어졌다. 조지 부시의 이라크전은 미군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얼마나 창의적인 변혁을 이루어냈는가를 여실히 과시했다. 러시아도, 중국도, 그리고 북한도 미군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경악했다. 이런 미국도 9·11테러 이후 빈 라덴 사살을 위해 아프간에 개입하면서 마치 브레즈네프의 소련이 당한 것과 같은 곤욕을 치렀다.

맥나마라는 국방장관에 취임하기 전 포드자동차회사의 CEO였으며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후에는 세계은행 총재로 있었다. 맥나마라는 두세대에 걸쳐 미국이 참전한 전쟁에 직접 참여하거나 생생하게 목도했다. 그의 충고는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공직자라면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가치가 있다. 국가안보의 일선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정부의 북한 핵에 대한 외과적 수술을 반대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이것을 후회했다. 지금 북한 핵은 당시보다 증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늦었다고 보는 지금이 가장 이른 시점, 적어도 더 늦지 않은 시점일 수 있다. 단 적절한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이겨낸 케네디와 맥나마라와 같은 지도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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