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여성 정치 리더 “가문의 후광, 투쟁,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새해를 맞아 주요 정당 대표를 모두 여성이 차지하면서 주류 정치를 여성이 이끄는 첫 정치 역사가 시작됐다. 남성이 주도했던 정치 흐름이 이제는 여성 참여를 넘어 여성이 주도하는 정치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아시아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찍부터 정계에 입문해 엘리트 코스를 밟은 여성 지도자도 있고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정치적 역량을 키워온 지도자도 있다. 또 아버지나 남편, 오빠 등 가족들이 국가 수장을 지낸 뒤 자리를 이어 받아 대통령이나 총리가 된 경우도 있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엄격히 제한된 것으로 알려진 중동에서도 여성 지도자가 나왔다. 물론 아직 한계도 있고,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쨌거나 기존의 남성적인 정치 영역에 여성이 지도자급으로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또 앞으로는 이러한 성별의 구분 자체가 의미없는 날이 와야 한다. AsiaN은 아시아 각국에서 대통령, 총리 등 국가 수장을 지냈거나 이에 버금가는 자리에 올라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현대의 여성 정치 지도자들을 모아봤다.

중국은 베이징 부시장과 부총리를 지낸 ‘우이’, 칭하이성 성장을 지낸 ‘쑹슈옌’, 전국인민대표 부위원장인 ‘첸질리’ 등이 대표적인 여성 정치 지도자다.

우이(??, Wuyi)
부총리를 지냈으며 별명은 ‘철낭자’. 중국석유대학(中?石油大?) 석유정제학과 졸업(1962년) 후 란저우와 베이징 석유공장에서 26년 일했다. 1988년 베이징 부시장 취임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2002년 제16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유일한 여성 정치국 위원으로 선정됐다. 2004년과 2005년 연속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위에 올랐다(1위는 메르켈 독일 총리). 1989년 천안문 사태 여파로 중국 대외무역이 사면초가에 빠진 상태에서 베이징 무역대표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했으며,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과 2003년 사스(SARS)와의 전쟁,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 유치 등을 이끌었다. 독신인 우이의 성공은 쑨원의 부인 쑹칭링, 저우언라이의 부인 덩잉차오 등 유명한 남편을 둔 중국의 1세대 여걸들과 비교되기도 한다.

쑹슈옌(宋秀岩, Song xiuyan)
중국 역대 2번째 여성 성장. 최초 여성 성장은 1983년 장쑤(江蘇)성의 前 구슈롄(顧秀蓮) 성장이다. 1955년생으로 현재 전국부녀연합회 제1서기. 2002년 칭하이(靑海)성 부성장을 거쳐 2004~2010년까지 칭하이성 성장을 지냈다. 후진타오 주석의 신임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쑹슈옌이 2010년 11월 북한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형섭 북한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이 김정은 후계설을 공식 확인하기도 했다.

천쯔리(?至立, Chen zhili)
중국 최초 여성 교육부장관으로 현재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과 올림픽선수촌 단장 등을 맡았다. 1942년생으로 복단대학 물리학과 졸업 후 1982년까지 학자로 지냈다. 상하이연구소 연구원으로 가면서 이후 상하이 과학기술위원회 사무총장, 상하이시 당위원회 대표 등을 맡아 행정 경험을 쌓았다. 주룽지 총리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교육부장관 시절 15세에서 50세 사이 문맹퇴치 프로젝트와 9년간의 의무교육 도입으로 주목을 받았다.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에서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다. 태국의 현 총리는 오빠의 후광, 방글라데시에서는 아버지와 남편이 대통령이었던 여성 2명이 각각 총리가 됐다. 버마 민주화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는 20년 넘게 가택연금된 뒤 다시 선거 준비를 하고 있다.

셰이크 하시나 와제드(Sheikh Hasina Wazed)/방글라데시
1947년생. 1975년 쿠데타 당시 부모, 형제, 아들을 잃고 해외에서 떠돌다 1981년 아와미연맹당(AL) 당수로 추대돼 귀국했다. 아버지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 초대 대통령에 이어 1996년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에 올랐으며 2009년 재선됐다.


베굼 칼레다 지아(Begum Khaleda Zia)/방글라데시

1945년생. 1977년 쿠데타로 대통령에 취임한 지아 울 라만이 남편이다. 1982년 군사 쿠데타에서 지아 울 라만이 숨진 뒤 방글라데시 국민당(BNP) 당수를 맡아 정치에 나섰으며 1991년 방글라데시의 첫 여성 총리가 됐다. 무슬림계에서는 베나지르 부토에 이어 두번째 총리였다. 1996년까지 재임하고 2001년 다시 총리에 올랐다.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버마
1945년생. 버마(미얀마)의 비폭력 민주화 운동지도자이자 최대 야당인 민족민주동맹(NLD) 당수다. 1988년 8월8일 오전8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소위 8888 항쟁 후 NLD가 만들어졌고 1990년 총선에서 그녀가 이끄는 NLD가 압승을 거뒀으나, 군사정권은 선거무효를 선언했다. 아웅산 수치는 1989년~2010년까지 가택연금 처분을 받았다. 라프토상, 사하로프상, 노벨평화상(1991년)을 수상했다.

소니아 간디(Sonia Gandhi)/인도
1946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라지브 간디 총리의 부인이자 역시 인도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의 며느리였고 인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손자며느리이다. 1998년 당시 대표적인 야당인 국민회의 총재로 선출돼 지방선거에서 압승으로 이끌었고 2004년 총선에서도 국민회의를 승리로 이끌었다. 현재는 집권 국민회의 당 대표이다.

프라티바 파틸(Pratibha Devisingh Patil)/인도
1934년생. 소니아 간디 대표의 국민회의 당원으로 2007년 대통령에 올랐다. 변호사 출신으로 1962년 정계에 입문했으며, 2004년 라자스탄주에서 첫 여성 주지사를 지냈다. 내각제 국가인 인도는 총리가 실권을 가지며 대통령은 국가원수 지위와 군통수권을 지닌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Megawati Sukarnoputri)/인도네시아
1947년생. 인도네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2001~2004년)을 지냈다. 수뢰혐의와 무능한 국정운영으로 비난 받던 압둘라만 와히드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부통령이던 메가와티가 대통령이 됐다. 현재 야당인 민주주의당(PDI-P)의 당수로 있다.

 

완 아지자 완 이스마엘(Wan Azizah Wan Ismail)/말레이시아
완 아지자 완 이스마엘은 말레이시아 ‘인민정의당 (People’s Justice Party)’ 대표이며, 1999년부터 2008년까지 페낭 주 페프마탕 파우(Permatang Pauh)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Gloria Macapagal-Arroyo)/필리핀
1947년생.?필리핀의 첫 여성 대통령(1987~1992년)을 지낸 마리오 코라손 아키노(Mario Corazon Sumulong Cojuang Aquino)에 이은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다. 1998년 필리핀 첫 여성 부통령에 당선됐고 2001년 조셉 에스트라다가 민중봉기로 대통령에서 쫓겨나면서 아로요가 직을 승계해 2010년까지 재임했다. 재임중인 2010년 5월 총선에서 당선돼 그해 6월 30일 대통령 퇴임 이후 하원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Chandrika Bandaranaike Kumaratunga)/스리랑카
1946년생. 1988년 남편 비자야 쿠마라퉁가와 함께 스리랑카민중당(SLPP)을 창설하고 총재가 됐다. 1994년 8월 야당 연합체인 인민연합당(PA)을 이끌고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총리직에 올랐으며, 같은 해 11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9년 11월 재선된 뒤 폭탄테러로 오른쪽 눈을 실명(1999년 12월)했다. 2000년 10월에도 반군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 대원에게 자살폭탄 테러를 당했지만 무사했고 2005년 11월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태국
1967년생. 탁신 친나왓의 막내 여동생으로,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2011년 7월3일 시행된 태국 국민의회의 인민 대표원 총선거에서 프어 타이당(Pheu Thai Party, PTP, 뜻은 ‘타이를 위해’) 총리 후보로 출마, 전체 500석 중 265석을 획득하면서 승리를 거뒀다. 2011년 8월5일 총리 임기가?시작됐다.

중동지역에서는 변호사, 기자 등 전문직 여성들이 정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투쟁에 가까운 정치활동은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시린 에바디(Shirin Ebadi)/이란
200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법조인이자 인권운동가.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로 1979년 이란 혁명 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여성과 아동의 권리증진을 위한 투쟁에 주력했다. 이란 정권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으로 박해를 받고 2009년 이후 이란의 테헤란을 떠나 영국에서 지내고 있다. 2004년 포브스가 선정한 ‘전세계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차기 대권주자로 불린다.

타와켈 카르만(Tawakel Karman)/예멘
1979년생.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언론인이자 평화운동가.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2005년 언론 및 의사표현의 자유, 민주적 권리 보장을 촉구하기 위한 인권단체인 ‘자유여성언론인’을 조직해 의장을 맡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사나에서 정치범의 석방 등을 요구하며 주기적으로 연좌시위를 벌였다. ‘혁명의 어머니’, ‘철의 여인’등으로 불리고 있다.


아마트 알 알림 알소스와(Amat Al Alim Alsoswa)/예멘

예멘 최초의 여성 인권부 장관(Ministry of Human Rights). 최초의 여성 기자로 이름을 알린 후 여러 차례 ‘여성 최초’ 기록을 세웠다. 예멘 최초 언론사 여성 임원(Sana TV 이사)으로 재직 후 최초 여성 정보부(Ministry of Information) 차관, 최초 여성 대사(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등을 지냈다.

하야 라시드 알 칼리파(Haya Rashed Al Khalifa)/바레인
이슬람권 여성 최초 유엔총회(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의장. 바레인 최초 여성 변호사이자 최초 여성 대사(프랑스)를 지냈으며 국제변호사협회(International Bar Association) 부회장을 역임했다. 바레인 칼리파 왕가의 일원이기도 하다.

나자 알 아타(Najah al-Attar)/시리아
시리아 최초 여성 부통령이자 아랍권 최초 여성 부통령.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 아랍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시리아 문화부에서 아랍문학 번역 업무를 맡았다. 이후 시리아 문화부 장관에 임명된 뒤 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자신은 성공한 정치인이지만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남동생은 독일에서 망명 중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여야 주요 정당 대표를 모두 여성이 차지했다. 통합진보당 역시 3명의 공동대표 중 심상정, 이정희 대표가 여성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15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됐다. 한 대표는 2006년 대한민국 첫 여성 총리를 지냈으며, 2010년 서울시장 첫 여성후보로서 오세훈 전 시장과 박빙의 선거전을 펼치기도 했다. 여성계와 시민단체 활동으로 시작해 국회의원과 여성부·환경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한나라당은 지난 달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내세웠다. 지난 2004년~2006년 당 대표를 맡았던 박 위원장은 집권여당이 위기를 맞으면서 구원 투수로 당의 전면에 재등장했다. 지난 2007년에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현재 이명박 대통령에 후보 자리를 내줬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위원장은 올해 대선에서도 유력한 대권주자이다.

AsiaN 편집국 news@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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