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여자아이들의 호소 “그래도 ‘살아남은 것’은 다행입니다”

10:19 AM Friday 10 August 2012
박소혜

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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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봉사단체 ‘더 체인지’…세계여자아이 열악한 현실 알리는 ‘패션쇼’ 개최

한국 고등학생들이 올해부터 유엔에서 공식선포된 ‘세계 여자아이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패션쇼를 마련했다. 8일 밤 서울 여의도 마리나클럽에서 열린 패션쇼는 청소년들이 제3세계 여자아이들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누더기를 걸친 소녀들이 흰 헝겊에 묶여 한 남성을 따르는 것으로 시작된 패션쇼.

맨발에 검은 옷을 입은 소녀들이 등장해 관객들이 앉아 있는 좌석을 지나갔다.

얼굴을 반쯤 가면으로 가린 모델들은 검은색천과 흰색천이 섞인 옷을 걸쳤다.

밝은 현실을 의미하는 흰색천에 적힌 숫자는, 인간으로 태어나 부여되는 생일, 주민번호 등을 뜻한다.어둡고 열악한 현실을 의미하는 검은색천에는 아무런 글씨가 없었다. 여자아이로 태어나서 ‘출생신고도 하지 못하고 죽는’ 비참한 현실을 뜻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공식적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니’ 죽어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흰색의 세계에선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다.

패션쇼는 검은 망사를 머리에 두른 소녀들이 장미꽃을 들고 나타나는 순서로 이어졌다.

성냥팔이로 상징되는 한 소녀가 촛불을 들고 서 있다가 무대 앞에서 쓰러지고, 밝은 옷의 소녀들은 갈 길을 잃은 성냥팔이 소녀를 밀쳐 넘어뜨린다. 후원자를 상징하는 천사 소녀들에게 도움을 받은 이 소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소녀들이 무대를 오가며 장미꽃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 패션쇼는 아동구호단체 ‘플랜코리아’와 함께 ‘Because I am a Girl’ 캠페인을 펼쳐온 청소년봉사단체 ‘더 체인지(The Change)’ 학생들이 손수 기획한 자리였다.

제3세계 여자아이는 패션쇼에서 상징한 것처럼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이중차별을 받고 있다.

‘플랜코리아’가 패션쇼 시작전 영상을 통해 보여준 한 제3세계 여자아이의 내레이션은 이런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이 여자아이의 엄마는 15살이다. 10대 여자아이들은 애를 낳다가 죽고, 1억명의 여자 아이들은 남아선호 때문에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여자아이라서’ 건강한게 다행이고, ‘여자아이라서’ 살아남은 것은 다행이다. ‘여자아이라서’ 강제결혼을 안하게 되면 다행이고, ‘여자아이라서’ 내 자녀가 같은 삶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지난해 유엔은 이런 열악한 제3세계 여자아이들의 현실에 전 지구촌의 관심을 호소하는 의미로 10월11일을 ‘세계여자아이의 날’로 공식 선포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더 체인지’ 대표 임현정 양(18살, 미국 미국 하치키스(Hotchkiss)고교 2학년)은 “세계여자아이의 날 제정을 위해 이를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할 때마다 10~30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했다. 같은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저마다 공부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았다. 어른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청소년들이 공부 외에도 마음 놓고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패션쇼에 참석한 이원욱 의원은 “국회의원 당선 후 처음으로 이메일을 받은 것이 현정양의 것이었다. 세계여자아이들을 위해 ‘분홍색 넥타이’를 하루 매달라는 것이었다. 내 답장이 첫번째였나보다. 어른들이 해야할 일을 대신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대견하고 기특하다. 때로는 눈물도 난다. 제3세계 여자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순옥 의원도 한국의 열악했던 여자아이의 현실을 회고했다. “내가 입고온 이 옷은 지난해 공장에서 12시간 이상 일하는 아줌마가 만든 옷이다. 나도 1970년대 어렸을 때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주변 친구들도 초등학교조차 못다니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남자형제들이 학교 가는걸 도왔다.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 하는 일이 고맙다.”

이상기 아시아엔(The AsiaN) 대표이사는 “1년 전 만해상 시상식에서 평화부문 수상자인 네팔 코이랄라 수상자를 만나고 싶다며 연락한 학생이 바로 오늘 이 행사를 준비한 임현정 양이다. 비가 많이 왔는데도, 폭우를 뚫고 강원도에 와서 코이랄라 여사를 만나고 갔다. 코이랄라 여사는 네팔 인권운동의 상징같은 분이다. 어린 학생들이 제3세계 여자아이들을 고통과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세계여자아이의 날은 10~20년 뒤엔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체인지’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의 학부모이기도 한 권영세 전 의원은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다가 원조를 하게 된 첫 나라다. 더 자랑스러운 것은 어린아이들이 남을 돕고 시야를 넓혀서 외부세계로 적극 나섰다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악가인 임웅균 교수는 “어떻게 학생들이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했는지 놀랍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내 나이 또래가 한맺히게 겪었던 것을 40년 뒤 이렇게 이 학생들이 풀어주고 있다”며 ‘내 친구에게 이 사랑 전해주길’이라는 이태리 가곡을 반주없이 들려줬다.

패션쇼 기획과 진행, 옷 디자인과 제작 등을 맡았던 임현정 양은 무대가 끝난 뒤 ‘제2의 한비야’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임양은 “3년간 준비했다. ‘세계여자아이의 날’인 10월11일에는 미국에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다시 더 발전된 모습의 패션쇼도 열고 더 많은 동참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3세계 여자아이들에 대한 후원은 ‘플랜코리아(www.plankorea.or.kr)’를 통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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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
사진=민경찬 기자 kris@theasian.asia
영상=정성원 인턴

The AsiaN 편집국 news@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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