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의원들 안 보이는 데로 비켜!”
국회방호처 직원들, 행사?사전약속?고교생에 “제헌절행사 방해된다”며 제지
‘세계여자아이의날’ 캠페인 학생들 “국회의장에 항의서한 보내겠다”며 ‘울분’?
제헌절인 7월17일, 입법기관인 국회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진행되는 제헌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의원들이 하나둘씩 국회의사당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행사 시간보다 30분 전에 국회의사당 앞을 찾았다. 청소년봉사단체 ‘더 체인지(The Change)’가 마련한 ‘핑크넥타이 포토 세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더 체인지’는 국제아동후원단체인 플랜코리아와 함께 차별과 폭력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개발도상국 여자아이들을 위해 <Because I am a Girl>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 캠페인에 대한 세계적인 지지를 얻어내, 지난해 UN으로부터 10월11일을 ‘세계여자아이의 날’로 공식 지정받기에 이르렀다.
이번 행사는 한국의 국회의원들도 이런 취지에 공감하고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소녀들을 상징하는 ‘분홍색띠’를 어깨에 두르고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자리였다.
학생들이 국회의원들을 한꺼번에 보기 어려우니 마침 ‘제헌절 행사 30분 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포토세션’ 행사를 준비했다.
‘더 체인지’를 만든 임현정(18)양과 회장을 맡고 있는 이시형(18)양을 비롯한 목동고, 강서고, 유학생 등 40여명의 학생들은 이날 오전 8시 반부터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제헌절 행사 경호를 위해 주변에 배치됐던 국회 방호처에서 몰려들더니, 현수막과 어깨띠는 두를 수 없다며 학생들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행사를 도와준 현정양의 고모 임옥희씨가 “설훈 의원실에서 행사를 접수했고 허락받은 것”이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행사를 확인하고도 이들은 ‘불법집회’라는 용어를 썼다.
의원들이 오전 9시 반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면 학생들이 한명씩 이들을 안내해 분홍색 어깨띠를 두르고 사진을 찍기로 돼 있었다. 전날까지 50여 명의 의원들이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던 행사였다.
교복입은 학생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 국회 방호처 관계자들은 “국회의사당 계단 위에서 안보이는데 가 있으라”고 했다. 이들은 심지어 학생들을 빙 둘러싸고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소위 ‘채증’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학생들은 ‘의원들이 볼 수 없는’ 국회의사당 계단 아래 모여 있었다. 방호처 관계자들은 현장에 찾아온 의원 비서관들의 설명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후 등장한 다선 의원실 비서관이 하는 말에는 조금 귀를 기울이는가 싶더니, 국회의원들이 하나둘 현장을 찾자 드디어 제지를 멈췄다.
모두 6명의 의원들이 이날 행사를 기억하고 학생들을 찾아 계단 아래로 왔다. 길정우, 박남춘,?설훈, 이원욱, 최민희, 홍의락?의원 등이 전부였다.
몇몇 의원들은 국회의사당 앞 계단 위에서 잔디밭쪽 아래를 내려다보긴 했지만 직접 내려오진 않았다.
행사를 도왔던 임옥희씨는 “많은 의원님들이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행사 취지에 동참하겠다고 했는데, 학생들이 계단 위에는 접근할 수도 없어 의원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그분들이 우리가 마치 약속을 어긴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어서 속상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소녀들이었던 ‘일본군 피해 위안부’에서 시작해 세계 각국의 상처받는 여자아이들을 위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10대 청소년들이었다.
국회 방호처는 이 학생들이 ‘국회의원들 눈에 띄면 안 될 불법 집회자’로 보였는가. 윤원중 국회사무총장이 지난 봄 벚꽃이 활짝 핀 국회를 소개하며 “보다 많은 국민들이 국회를 방문해주셨으면 한다”고 했던 말이 더 없이 무색할 뿐이다.
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