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교장 “5000만 국민이 세계시민학교 예비학생”

바람의 딸 한비야는 7년간 오지 배낭여행을 했고, 최고의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으며,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으로 10년 동안 세계의 긴박한 현장을 누볐다. 이제는 세계시민학교 교장, 외교통상부 개발협력 자문위원,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CERF) 자문위원,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자문위원,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현장, 연구, 정책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인터뷰>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초대교장

지난 8월 남수단으로 떠났던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초대교장이 5일 한국에 돌아왔다. 월드비전과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기부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3일 일정으로 온 그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남수단의 바쁜 일정을 미뤄둔 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황급히 와야 했을 정도로 이번 일정은 중요했다.

6일 여의도 월드비전 센터에서 만난 한비야 교장은 “역사적 이벤트, 한국 교육사의 획을 긋는 사건”이라며 이번 협약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NGO인 월드비전의 세계시민교육이 공교육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5000만 국민을 세계시민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10년 안에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성숙한 세계시민이 될 수 있도록 월드비전의 인력, 네트워크, 자료를 총동원하겠다.”

“세계시민이라면 세계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져야 한다”

한 교장은 그의 강연이나 인터뷰를 접한 후 ‘당신의 일을 돕겠다’고 약속했던 많은 사람들이 다음날 말을 바꾸며 주저주저 하는 모습을 보고 세계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더 이상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해서 기부를 이끌어 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1회성으로 그칠 확률이 높다. 교육을 통해 약자를 돌보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삶인지? 체화시켜야겠다는 강한 책임감이 생겼다.”

한비야 교장은 세계시민의식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라고 믿는다.

“세계시민이란 세상 사람들을 공동 운명체이자 친구라고 여기며 세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세계시민이라면 우선 머릿속에 세계 각국의 지도가 그려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가슴에는 식량위기, 지구 온난화, 물 부족, 종교간 갈등 등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담고 있어야 한다. 오늘 세수하며 낭비한 물 때문에 누군가 고생할 것이란 인식이 있어야 한다.”

한 교장은 또 세계시민교육은 국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능력이 뛰어나고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약자를 돌봐야겠다는 의식이 없으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좋을 수 없다. 국가도 약소국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국격이 드러난다.”

월드비전 양호승 회장, 한비야 세계시민학교 교장,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6일 교육기부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광고출연료 1억원 월드비전에 쾌척… 2007년 세계시민학교 문 열어

세계시민학교는 한비야 씨의 광고출연료 1억원을 마중물로 2007년 시작됐다. 3박4일간 진행되는 세계시민학교는 첫해 청소년?100명을 시작으로 현재 30만명이 교육을 수료했다. 2010년 5월 경기도 과천 서울랜드에 ‘세계시민교육관’을 만들어 상시 운영하고 있다. 한 교장은 지난해 12월 초대 교장에 취임했다.

세계시민학교는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가상 재난 현장체험, 모의 UN총회, 실천선언문 채택 등 참가자 스스로가 기획하고 참여하는 자율적인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야영장에 도착한 아이들에게 차에서 내리는 순서대로 세계 각국의 국적을 부여한다. 국적은 자의로 선택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아이들은 새로 생긴 국적에 따라 각기 다른 생활환경을 갖추게 된다. 프랑스나 일본 등 부자 나라 국민이 된 아이들은 밥과 반찬, 물, 담요 등을 풍성하게 받고, 수단 등 가난한 나라의 국적을 받은 아이들은 캠프 기간 내내 열악한 조건에서 지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불공평하게 나뉜 자원을 어떤 태도로 어떻게 나누고 주고받아 쓸지를 일체 아이들 자율에 맡기면서 스스로 세계시민의 바람직한 모습을 깨닫게 하는 식이다.

교과부와 업무협약을 통해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이 청소년은 물론 일선 교사, 학부모, 나아가 일반시민에게까지 확대된다. 매년 17만명 교육을 목표로 두고 있다. 월드비전과 교과부는 세계시민교육 외에 교재 발간, 교육기부 매니저 양성(연 800명), NGO 단체 진로교육(연 1만명), 교원연수(연 260명) 등을 실시한다.

“10년 안에 5000만 국민 마음에 세계시민의식 뿌리 내릴 것”?

한비야 교장은 “세계시민의식이 교육 몇 번 받는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국민이라면 10년이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내가 처음 월드비전에 들어와 봉사활동을 시작했던 2000년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에도 도울 사람 많은데 왜 바깥에 눈을 돌리냐’는 비난이 더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 급한 곳에 써달라고 돈을 손에 쥐어주기도 한다. 의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불과 10년만에 너무 많이 바뀌었기에, 앞으로의 10년간 얼마나 큰 변화와 혁신이 일어날지 기대가 크다.”

실제 한 교장이 10년간 NGO 활동을 했던 월드비전만 놓고 볼 때 한국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어느새 구호활동을 펼치는 100여 개의 나라 중 네 번째로 자리매김해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다음으로 많은 원조를 하고 있고, 영국 등 유럽 여러 선진국가들 보다 더 많은 원조를 하고 있다.

세계시민학교의 별칭은 ‘지도 밖 행군단’이다. ‘나’라는 지도, 나의 한계라는 지도, 사회의 통념과 편견이라는 지도 밖으로 나가라는 뜻이다. 그리고 지도 밖 사람들도 살피고 돌보라는 뜻이다.

한비야 교장은 “세계시민으로 자란 아이들이 전 세계로 퍼져 다양한 국제무대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제 몫을 하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며 “앞으로도 이 ‘지도 밖 행군단’을 위해, 나아가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세계시민 교육을 위해 내가 가진 어떤 힘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남수단 월드비전 긴급구호 총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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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교장은 인터뷰 다음 날 밤?남수단으로 떠났다. 내년 2월까지 남수단에 머물며 학교건립, 질병예방, 식량지원 등의 활동을 펼친다. 남수단에서 그의 직함은 월드비전 긴급구호 총책임자. 지난 8월 떠날 때만 해도 남수단에서 긴급구호 활동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게 주 임무였다. 하지만 가서 보니 총책임자 자리가 공석이었다. 훈련이고, 대학 교수(이화여대 초빙교수)로써 전체 일을 보며 쌓을 수 있는 게 더 클 것 같아 기꺼이 수락했다.

남수단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은 모기와의 사투. 화장실에서, 샤워실에서 모기에 물리기 일쑤다. 물리기만 하면 다행인데, 말라리아에 걸려 일주일을 아무 일도 못하고 끙끙 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 체류자에겐 약도 별 소용이 없단다. 이겨내는 수밖에는.

또 나일 강변에 길이 없어 어딘가로 이동할 때 보트를 자주 이용하는데, 악어와 하마들의 출몰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악어가 잡아놓은 동물의 사체 썩는 냄새도 고약하다. 정말 무서운 것은 보트를 탐내는 북수단 무장군인들이다.

한번은 원주민들에게 붙잡혀 간이 서늘한 적도 있었다. 수단의 딩카족은 13~15세 나이의 남자아이들이 한 달간 용감함을 과시하기 위해 발가벗고 몰려다니며 위험한 행동을 하는 성인식을 치루는데, 어느 날 이 아이들과 마주한 것. 한비야 교장은 겁내기 보다 당당하게 한 명 한명에게 악수를 청하며 ‘가와자(안녕)’ 하고 인사를 나눴다. 이 일군의 아이들은 처음 본 동양인 여성의 인사에 당황해 하며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보내줬다고.

남수단 사람들은 오랜 전쟁에 치이면서 사람을 잘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단다. 오태석 신부가 대단한 점이 그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점. 한비야 본인은 오태석 신부의 반에 반도 못 쫓아간다고 했다. 그래도 가능성을 믿고 열심히 구호 사업을 해 나갈 생각이다.

한 교장은 한 번도 자야지 마음먹고 자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늘 일하다 작업복 차림으로 잔다. 그래도 괜찮단다. 무슨 일을 잘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되는거 아니냐며. 사람은 다 얻을 수는 없다. 좋아하는 등산(남수단은 평평한 당구대 같다), 친구를 포기하고 하는 이 일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단다.

한 교장은 “한국에 올 때마다 정체된 모습이 아니라 늘 진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기분 좋다. 앞으로 우리 함께 살며 변화하는 모습을 함께 보자”고 파이팅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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