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구호전문가 “박사과정·세계시민학교 병행, 고달픈만큼 보람도 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세계적인 구호전문가이자 ‘바람의 딸’로 불리는 한비야씨는 요즘 박사과정 공부와 세계시민학교 교장 그리고 대학 강의로 여전히 1인 다역(多役)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20일 <아시아엔> 창간 4돌 기념행사에서 기자를 ‘평동’(평생동지)이라고 소개했다. 기자는 2011년 6월 베이징대에서 연수중이던 그와 3박4일 동안 아홉끼 식사를 나누며 동행한 적이 있다. 그때 뜻이 맞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앞으로 평생을 동지로 지내자”며 ‘평동’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창간기념 행사 며칠 뒤 그가 아시아엔 후원금을 보내왔다. 기자가 전화를 걸어 “세계시민학교 하기도 벅차고 박사과정에 다니면서 무슨 여유가 있다고 후원을 다….”라고 했더니 “없는 사람끼리 도와야 진짜 돕는 거고 좋은 일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며 예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빠져든 기자는 메모를 하다가 이내 녹음을 하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평동 인터뷰’는 이렇게 이뤄졌다. (한비야씨와 기자는 평소에 경어체를 쓴다. 인터뷰는 그러나 평어체로 정리한다.)
지난 번 아시아엔 기념행사 건배사 고맙다. “우리는 아시아엔의 금강송을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 아시아엔을 사랑합시다!”라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오늘(인터뷰 당일)이 12월9일인데 학기말 시험은 어떻게?
“기말이라 바쁘다. 박사과정 공부도 하고 세계시민학교 교장 역할도 해야 하고, 지난 5년간 가을, 겨울에는 해외현장에서 일하는데 올해는 한국에 있다보니 참석해야 할 행사가 얼마나 많은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그 와중에 이번 2학기 성적장학금을 받았다. 해외 있다면 모를까 한국에 있는 한 사회생활을 해야 되는 일이 생긴다.”
지금 박사과정 2학기째? 전공은 뭔가?
“이번 끝나면 2학기 남는다. 절반 마쳤다. 전공은 ‘국제구호와 개발협력의 연계점’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네팔 산악지역에 10년간 열심히 여러 단체와 지역주민들이 다리도 놓고, 학교도 세우고 했는데 지진이 발생해 10초만에 다 무너져버리면 허사가 되고 만다. 그런 상황에 맞춰 재난 대비를 잘 하면 재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니까 병원으로 치면 응급수술보다 예방접종을 잘 하는 게 훨씬 나은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그걸 연구하고 있는 거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15년을 일했는데 지나서 보니 그것도 중요하지만 설거지만 하는 느낌이다.”
비유가 조금 심하지만 아주 적절한 것 같다.
“지금의 자연재해가 기후변화 때문에 잦아질 텐데, 재난대비와 피해규모 축소가 굉장히 중요하다. 먼저 현장에 대한 연구가 되어야 정책으로 갈 수 있다. 정책으로 돼야 훨씬 체계적으로 구호를 할 수 있다. 지금 하는 공부가 그걸 배우는 것이다.”
유엔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 역할은 계속 하고 있나?
“3년 임기인데 2014년에 끝났다. 그러니까 박사과정 공부가 가능하지.” (그는 1986년 늦깎이로 홍익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유타대학 대학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제구호활동을 시작한 이후 2010년에는 미국 터프츠대학 플레처스쿨에서 인도적 지원학으로 석사학위를 또 받았다.)
박사과정 하면서 학부생 강의도 한다고 하던데?
“학부 필수교양 과목인데 5년째 ‘국제구호와 개발협력’을 가르치고 있다.”
병신년 새해 목표는 무언가? 화두라고 할까….
“일단 2가지가 목표다. 하나는 박사과정을 잘 마무리 하는 건데 현장에서 미처 몰랐던 큰 그림 그리기를 연구하려 한다. 재난대비 정책 수립을 위한 유엔이나 개별 국가단위의 계획을 배울 생각이다. 현장 전문가 외에 연구자나 학자로서의 글쓰기도 열심히 하려 한다. 그래야 현장과 연구 그리고 정책의 3박자를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시민학교 활동에 더욱 매진하는 거다. 2007년 50명으로 시작해 지금 50만명을 가르치는데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1년에 50만명? 그 많은 학생을 무엇으로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세계시민의식을 가르친다. 교재를 개발하고, 800명의 강사를 양성한 후 현지로 파견해 가르친다. 교육부와 MOU를 맺어 일선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교육부 예산은 없이 기부금을 모아 한다. 법무부와 함께 공익신탁이라는 걸 만들어 고액기부 신탁금도 받고 있다. 월드비전에서 세계시민학교를 전담하는 직원 25명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서울에 본부가 있고 지방 19곳에 지부가 있다.”
세계시민학교는 월드비전에만 있나?
“월드비전뿐 아니라 국제이해 교육, 글로벌 시민교육 등 여러 이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세계시민학교라는 타이틀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 맞춤형 교재로 찾아가는 교육을 하는 건 월드비전 외엔 없는 걸로 안다. 내가 초대 교장이다 보니 세계시민학교를 마치 내가 만든거냐고 묻기도 하는데 당연히 아니다. 나는 세계시민학교 교장을 10년만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올해로 5년째다. 남은기간, 즐겁게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최근 <중앙일보> 주말 칼럼에 난민 얘기를 썼더라.
“난민의 경우 어느 국가에서 받아들이면 고마운 거고, 아니면 이유가 있어 그렇구나 여길 수밖에 없는 문제다. 얼마 전 강원도로 산행을 갔는데, 새벽에 땅에서 냉기가 올라와 잠을 설쳤다. 중동지역 난민들의 일상이 바로 그렇다. 난민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IS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진다. 어떻게 대책이 없을까?
“얼마 전에 IS에 대해 글을 썼는데 학생들이 그걸 가지고 토론을 한다고 들었다. IS 문제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난민문제가 나왔으니 말인데, 가장 피해가 큰 중동의 이슬람 청소년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청년실업률이 제일 높은 데가 중동이다. 청소년들이 갈 데가 없으니 IS에 가담하는 일까지 생긴다. 중동 문제에 걱정과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브레인스토밍을 하면 작은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중동 현지민, 중동 연구자, 구호활동가와 테러연구자 등 10명 안팎이 브레인스토밍을 하면 어떨까? 나도 힘을 보태고 싶다.”
<아시아엔>은 편집자가 31살이고, 그 아래 이집트, 파키스탄에서 파견 온 상근기자를 포함해 전원이 20대다. 한비야씨를 닮아서 그런지 도전의식이 있다.
“하하하. 세상은 도전하는 사람들 것이다.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해봐야 아는 거다. 처음에는 도저히 못갈 것 같이 험하고 힘든 길도 한발짝씩 나가다보면 어느덧 산 꼭대기에 도착하지 않던가? 세상 일이 다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지만 돌아보면 해낸 일은 모두 이런 마음으로 한발짝씩 내딛으며 이룬거다. 그 한발짝이 내 가능성과 한계를 넓여가는 거라고 굳게 믿는다. 2016년 새해에도 <아시아엔> <매거진 N> 파이팅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