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구촌에 힘과 용기 주는 한국, 그리고 아시아
외국인 인턴기자들과 인터뷰했던 그날도 한비야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은 “재난과 위험, 기아가 있는 곳에 가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했다.
그래서 “최근 중국 연구에 많은 시간을 쓰신다는데, 그 이유가 남중국해 영토분쟁 등 중국과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 사이의 긴장이 가령 전쟁과 같은 재난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아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대답이 나왔다. 한 자문위원은 “어느 정도 관련이 없겠느냐만은, 그런 정치외교적인 것과는 무관합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대신 그는 원조 공여국이 된 중국을 주목한다고 했다. “제가 과거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저개발국에서 한창 구호 활동을 할 때 중국은 구호 액터(Actor)가 아니었지만, 그 뒤 불과 10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중국은 실제 저개발국을 상대로 막대한 규모의 개발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수단과 같은 저개발 산유국에서는 앞선 기술로 유전을 개발해 주고,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과 태국 방콕을 잇는 고속도로처럼 국가산업의 초석이 되는 사회간접자본을 지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중국의 이 같은 개발원조는 자국의 경제적, 혹은 정치외교적인 이득을 직접적으로 부합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동남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속도로나 벵골만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인도차이나 미얀마를 거쳐 쿤밍(昆明)까지 수송하는 송유관과 가스관을 짓는데, 여기에 필요한 건설자재는 전량 자국산으로, 건설인력도 대부분 자국인들로 각각 활용한다.
서구 사람들은 “이런 식의 개발원조는 구시대적”이라고 비판한다. 중국이 저개발국에 대한 개발원조를 통해 피원조국들을 중장기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불편한 시선이다. 실제 국제사회는 2005년 파리선언 등에서 개발 원조 때 피원조국의 자원(생산요소)을 최대한 활용해 경제자립을 돕자는 취지의 합의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자신들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한비야 위원은 그러나 중국에 대한 서구 국가들의 불편한 시각이 마뜩치 않다. “사람도 성장할 때 어린아이에서 사춘기,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중국도 원조 공여나 구호 액터(Actor)로서 성장하는 과정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득 지난 2010년 10월 당시 ‘G20 서울정상회의와 아시아 언론의 시각’ 포럼에 “중국인들이 죽어라 일해서 이제 고기(meat)를 먹고 살만하니까, 국제사회가 ‘고기를 먹는 것은 지구에 해가 되니까 비용을 지불하라’고 촉구하는 꼴”이라고 말했던 희신룡 신화통신 서울지국장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서구 선진국들은 야만적인 식민지 수탈과 신식민지, 냉전시대의 경찰 노릇을 하면서 온갖 정치·외교·경제적 영화를 누렸던 게 사실이다. 세월이 흘러 식민지들이 어렵사리 자립해 뭣 좀 해볼만하니까 ‘인권’과 ‘환경’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딴죽을 거는 모양새가 분명하다. 같은 식민지 출신 저개발 또는 개발도상국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빠른 성장세에 대한 견제 필요성을 근거로 서구 국가들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서구 국가들의 개발원조가 중국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인데도 그렇다.
국제사회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원조와 구호의 사절로 자리매김한 한비야 위원은?“원조는 ‘두 손으로(with empathy Politely)’ 그리고 ‘잘(efficiently, to be sustainable, and to be independent)’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피원조국 사람들에게 으스대는 게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수준의 공감(empathy)을 이끌어 내고, 피원조·피구호국 사람들이 원조물자 등을 통해 스스로 지속가능한 자립적 재생산구조를 갖도록 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구촌에서 이처럼 구호·원조활동을 잘 하고 있고, 잘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처음 원조(구호)를 받는 나라 사람들과 만나면 서먹하거나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한국은 식민지, 전쟁, 독재, 가난을 경험했다’고 말하면 그분들의 표정이 금세 환해져요. 자기들에게 은덕을 베풀고 가르치려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친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거죠.”
그는 곧 5개월 일정으로 남수단에 다녀올 예정이다. 어쩌면 몇 개월 일정으로 한국에 다녀온 것일 지도 모른다. 한국과 아시아가 오랜 내전으로 더 이상 추락할 데가 없어진 남수단 사람들에게 강한 삶의 에너지를 심어주고 왔으면 좋겠다. ‘두 손으로’ 그리고 ‘잘’.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