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대구시장은 어린 시절 순경이 아버지를 막 대하는 걸 보고 검사를 꿈꾸었다고 했다. 우리 또래가 소년 시절 흔히 보던 광경이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때 나는 빈민촌인
Author: 엄상익
[엄상익 칼럼] ‘권력형 검사’와 ‘인권변호사’
36년전 조영래·신기남·이원영 변호사를 추억하다 1987년 2월 5일 아침 10시경이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으면서 서소문 거리는 질척거렸다. 도로변에는 먼지 섞인 눈 덩어리들이 천덕구러기가 되어 뒹굴고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⑤] 국가에 목숨 맡기고 음지에서 싸우는 ‘전사’
정보요원 훈련 중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몇몇 요원이 외출을 나갔다가 카페에서 건달들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요원들은 그런 경우 기가 죽어서도, 져서도 안 됐다. 조직의 자존심이다.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④] 여성요원들 투지와 집착도 대단했다
그 며칠 후 나는 정예 요원들이 훈련 중인 코스에 중간에 합류하게 됐다. 세상에서 갑자기 첩보영화 안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 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봉쇄된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③] “조직적이고 방향성과 이념적 지향이 있는 듯했다”
나는 군부대 같은 곳 앞에 있었다. 철조망이 쳐진 회색의 높은 담이 보였다. 중간쯤에 대형 철문이 있고 그 앞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번들거리는 가죽졈퍼에 감색 헬멧과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②] 안기부 면접관과 마주하다
나는 36년 전 봄날의 하루가 적힌 일기장을 보고 있다. 나는 종로5가 뒷골목 낡은 빌딩의 한 사무실에서 안전기획부의 인사담당 요원을 만나고 있었다. 푸른 와이셔츠에 감색 넥타이를
[엄상익 칼럼] 내 믿음은 위선일까?
얼마 전 본 댓글 두 개가 마음에 남았다. 그중 하나는 내 글이 신학적 이론의 틀에 나의 경험과 생각을 끼워 넣고 그 안에서만 움직인다고 하면서 너무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①] 음지에서 벌어지는 전쟁
1987년 냉기 서린 바람이 부는 봄이었다. 점심시간 나는 서소문 뒷골목의 작은 스시집에서 안전기획부 요원인 대학 선배를 만나고 있었다. 그의 변신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엄상익 칼럼] 편안히 죽을 권리
내가 지내고 있는 실버타운의 식당에서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내가 암에 걸렸을 때 받아두었던 수면제를 한 병 모아뒀어요. 더 이상 살아갈
[엄상익의 촌철] 그는 영화나 드라마의 괴물 같은 국정원장이 아니었다
38년 전쯤이다. 30대 초반이던 내가 사는 아파트 옆집에 40대 중반의 남자가 살고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둥글둥글하게 생긴 아저씨였다. 그 집의 열린 창문에서는 때때로 찬송가
[엄상익의 촌철] 학교폭력의 추억
“나 4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어.” 고교동창이다. 이름과 소년시절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얘기를 하거나 같이 놀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는 나에 대한 기억이 명확한 것
[엄상익의 촌철] 무역회사 사장 출신 경비원의 ‘잔잔한 미소’
아버지는 30년 넘게 회사를 다니다 퇴직했다. 그 다음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평생 기계같이 회사로 갔는데 안 가니까 이상하다고 했다. 그 생활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 같다. 그
[JMS정명석의 기억⑦] 잘못 빠져든 보통 신도들까지 매도해선 곤란
정의 독점하고 분노로 JMS집단 재단하선 문제 못 풀어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30년간 컬트집단과 싸워온 한 대학교수의 집념에 의해 그 내막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는
[엄상익의 촌철] 법의 날, 잠자는 법원···”법관의 양심은 상식을 벗어나도 되나?”
판사의 인격과 혼이 담긴 판결문을 볼 수가 없다 아파트를 팔았다. 그 얼마 후 매수인이 소송을 제기했다. 인테리어에 하자가 있으니 배상하라는 소송이었다. 피고가 된 나는 흠이
[엄상익의 촌철] 북한 ‘핵’보다 무서운 남한의 ‘중2’
“나는 손녀가 세상을 보는 눈과 인생을 아는 마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그분께 기도한다.” 어느새 손녀가 커서 북한의 ‘핵’보다 더 무섭다는 남한의 ‘중2’가 됐다. 그런데 손녀는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