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④] 여성요원들 투지와 집착도 대단했다

권총 사격

그 며칠 후 나는 정예 요원들이 훈련 중인 코스에 중간에 합류하게 됐다. 세상에서 갑자기 첩보영화 안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 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봉쇄된 넓은 왕릉지역이었다. 작은 언덕 같은 왕릉이 있고 그 아래 사당이 있었다. 그 주변은 손질이 잘 된 넓은 잔디밭이 펼쳐졌고 크고 작은 연못이 보였다. 양지쪽의 연못에서는 비단잉어들이 흐느적거리며 유영하고 있었다. 그 뒤쪽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훈련중인 요원들이 기숙사로 쓰는 견고해 보이는 2층건물이 있었다.

나는 그 건물의 방을 배정받았다. 두 사람이 같이 쓰는 방이었다. 양쪽 벽으로 1인용 침대가 붙어있었고 창문 쪽으로는 나무책상이 나란히 보였다. 같은 방에 묵는 요원은 대사의 아들이라고 했다. 좋은 학벌을 가진 좋은 집안의 자식들이 그곳 요원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명문대 출신들이 많았다.

정보기관의 인사담당 부서에서는 대학입학 초기 때부터 우수한 인재들을 찍어 4년 동안 장학금을 주어가면서 요원을 기른다고 했다. 명문여대 출신도 여러 명 있었다. 남자요원들과 차별없이 똑같은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탤런트 같은 미인들이었다. 정규 사관학교를 나온 현역 대위들도 있었다.

그곳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교육대장이었다. 정보요원 중에서 우수하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교육대장은 요원들과 똑같이 밥을 먹고 막사에서 잠을 자고 같이 뛰었다. 입으로 말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그의 행동 자체가 교육인 것 같았다. 교육대장은 작달막한 키에 반듯한 이마를 가진 30대말쯤의 남자였다. 각진 턱과 근육질의 팔다리에서 그의 강인성이 느껴졌다.

나의 훈련은 권총사격부터 시작됐다. 나는 외떨어진 장방형의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사격장이었다. 교관이 나를 보고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가죽으로 된 007가방을 상위에 놓고 열었다. 검은 빛의 38구경 리볼버가 번들거리는 빛을 뿜고 있었다.

“군에서 장교생활을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러면 45구경 골트는 쏴보셨겠네요?”
“쏴 봤습니다.”

휴전선에서 순찰 돌 때 나는 탄창을 꽉 채운 45구경을 차고 다녔다.

“38구경 리볼버는 다루어 보셨습니까?”
“못 해 봤습니다.”
“별 거 아니예요. 한번 연습해 보세요.”

그는 안전장치를 풀고 들고 있던 리볼버의 탄창을 옆으로 제꼈다. 그리고 상위에 있던 실탄 곽에서 총알을 꺼내 탄창 구멍 속에 집어넣었다. 총알들은 자기의 구멍으로 매끄럽게 들어가 자리 잡았다. 그가 내게 리볼버 권총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우선 여기 실탄상자에 있는 백발을 재미 삼아 쏴보세요. 자꾸 쏴봐야 사격에 흥미를 가집니다. 오늘은 고정사격을 하고 익숙해 지시면 그 다음에는 움직이는 표적을 쏩니다. 마지막에는 사람이 이동하면서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걸 알려드릴 겁니다.”

군의 훈련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군에서는 형식적으로 몇 발 쏘게 하고 끝이었다.

사격장에서였다. 우연히 한 여성 요원이 사격을 하는 모습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 여성요원은 리볼버 권총을 손에 들고 표적을 노려본 채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온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 같았다. 그 여성요원이 쏘는 한발 한발의 실탄이 표적의 중앙에 정확히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한 문제 한 문제를 정성스럽게 푸는 시험에 임한 학생 같다고 할까.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과 수석을 한 인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쉬는 시간에 다른 한 여성 요원에게 물었다.

“북한의 여성 첩보원 김현희가 KAL 858기를 폭파하고 잡혔어요. 독극물이 든 샘플을 입에 넣고 자살하려다가 체포되어 지금도 안전기획부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북한의 여성첩보원들과 맞상대 하면 어떨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북한 첩보원 김현희와 저를 붙여주시면 저는 이길 자신이 있어요. 뭘 가지고 싸워도 말이죠.”

여성요원들의 투지와 집착도 대단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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