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⑤] 국가에 목숨 맡기고 음지에서 싸우는 ‘전사’
정보요원 훈련 중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몇몇 요원이 외출을 나갔다가 카페에서 건달들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요원들은 그런 경우 기가 죽어서도, 져서도 안 됐다. 조직의 자존심이다. 신분 노출은 철저히 금지됐다.
그런 문제를 처리하는 조직내의 파트에서 경찰의 관여를 금지시키고 격투를 벌인 요원들을 데려왔다. 외부적으로 조직원을 철저히 보호해도 내부적으로는 달랐다. 그날 밤이었다. 훈련 중인 요원들이 체육관에 집합했다. 앞에 서 있던 교육대장이 입을 열었다.
“규칙 위반자들 대열 앞에 나와서 서세요”
몇몇 요원이 앞으로 나가서 부동자세로 섰다. 카페에서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한 사람들이었다. 장교 출신들도 있었고 결혼하고 가정을 가진 30대초의 요원들도 있었다.
“여러분들 짐을 싸서 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저한테 맞으시겠습니까? 선택하십시요. 훈련이 힘드시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분만이 저희 조직의 요원이 되시는 겁니다.”
“맞겠습니다.”
규칙 위반자들이 모두 매를 선택했다. 이상했다. 맞으면서까지 직장을 고집하는 시대적 분위기는 아니었다. 더구나 그들은 매맞을 나이와 사회적 위치는 아니었다. 그중에는 육군에서 중대장을 마친 사람도 있고 공군에서 파일럿으로 전투기를 몰다가 온 장교도 있었다. 다니던 군으로 돌아가도 고급장교직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회에서 다른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스스로 폭력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규칙을 위반한 분들 대열 앞으로 나와 엎드려 뻗치세요.”
교육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규칙위반자들이 앞으로 나와 바닥에 엎드렸다. 교육대장은 준비해 놓았던 묵직한 박달나무 목검을 손에 들고 있었다. 교육대장은 맨 앞에 엎드려 있는 육군대위의 둔부를 향해 온몸의 힘을 실어 박달나무 몽둥이를 날렸다. 몽둥이가 ‘휙’ 하고 공기를 날카롭게 가르며 엎드려 있던 대위의 허벅지에 떨어졌다. 순간 대위가 ‘헉’ 하고 옆으로 나가 떨어졌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교육대장이 요원들 전체를 향해 말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저희 조직에서는 남산의 지하실에 끌려온 사람들마다 이렇게 50대씩을 선사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남에게 고통을 가하는 사람은 그 맛이 어떤 것인지 먼저 알아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어서 규칙을 위반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목검 세례가 퍼부어졌다. 허벅지 살이 터지고 피가 튀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없었다. 독한 인물들을 모아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맞은 사람들이 다시 대열 속에 들어가 섰다. 교육대장이 그 다음 조치를 알렸다.
“다음으로는 규칙위반에 대한 전체의 연대 책임을 묻겠습니다. 진흙탕 물속에 들어가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까?”
단체가 구보로 흙탕물이 가득 찬 작은 연못으로 갔다. 여성요원도 예외 없이 흙탕물 속에 들어갔다. 나도 맨 뒤쪽에서 그들과 함께 물속에 들어갔다. 밤하늘의 별이 총총했다.
문득 나치의 친위대원들을 훈련시키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얼음이 두껍게 얼어붙은 강위에 벌거벗은 친위대원들이 서있었다. 두껍게 얼어붙은 강의 두 부분에 구멍이 나 있었다. 발가벗은 친위대원들이 한쪽 얼음구멍으로 들어가 물속에서 헤엄 쳐서 다른 구멍을 찾아 나오는 혹독한 훈련이었다. 출구를 찾지 못한 친위대원은 물 속에서 익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요원들이 얻어맞는 매에도 어떤 의미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단체 기합이 끝나고 전체요원들이 도열해 섰다. 교육대장이 그곳에 놓인 단 위에 올라 흙탕물이 떨어지는 전체요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걸로 오늘 밤의 징계와 훈련은 끝입니다.”
그가 잠시 손목시계를 보면서 덧붙였다.
“지금부터 딱 1분 시간을 주겠습니다. 그 사이에 나한테 욕을 하고 싶으면 공개적으로 실컷 하십시오. 허용합니다. 시작!”
그가 말하자마자 요원들 속에서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야 이 씨발놈아”
“으, 저새끼 맞장 뜨면 한방에 되질 새끼가—-”
“아 억울해, 정말 억울해.”
그들의 가슴 속에 있던 응어리가 터져 나왔다. 묵묵히 듣고 있던 교육대장이 시계를 보다가 “자 이제 나 욕하는 거 끝”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들의 분노가 적막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느낌이었다.
교육대장이 이번에는 부드러운 표정이 되어 이런 말을 했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10여년 전 이런 훈련을 받고 요원이 됐습니다. 세상에서는 정보기관을 혐오하는데도 저는 직업으로서 이 생활에 긍지를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적어도 이 조직의 신분증을 가지면 이 사회에서 자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무시하고 깔아뭉개지 못합니다. 며칠 전 저에게 있었던 일을 예로 들겠습니다. 출근 길에 내가 운전하는 코란도 하고 어떤 고관의 차 하고 광화문 거리에서 시비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에 타고 있던 고관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면서 무게를 잡더라구요. 제가 시큰둥하니까 신분증까지 내게 보였습니다. 얼핏 보니까 꽤나 높은 자리에 있는 분 같았습니다. 제가 그 신분증을 뺏어서 그 놈이 보는 앞에서 꼬깃꼬깃하게 구겨서 바닥에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안전기획부 요원이란 신분증을 잠깐 보여줬습니다. 갑자기 그 놈의 얼굴이 허옇게 변하면서 당황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신분증이라는 게 그런 힘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는 기관이 없습니다. ‘이 신분증을 가지고 있으면 어디도 들어갈 수 있다. 누구한테도 꿀리지 않고 살 수 있다’ 나는 그런 자존심과 자유를 위해 이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잠시 침묵했다가 덧붙였다.
“모든 특권 뒤에는 그 댓가로 치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이렇게 철저한 훈련을 받는지 아십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제일 먼저 수송기를 타고 바로 평양 상공으로 가서 투하됩니다. 첩보 공작대로 적진 깊숙이 들어가 게릴라 활동을 해야 하는 겁니다. 저 역시 평양에 내 담당구역이 있습니다. 그런 운명을 알기 때문에 저는 아들도 하나밖에 낳지 않았습니다. 중산층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오해하듯 특권을 누리고 인권을 유린하는 그런 기관원이 아닙니다. 목숨을 국가에 맡겨놓고 음지에서 싸우는 마지막 전쟁의 전사들이라는 걸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이 요원들의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